평생교육원 시반은 서른 명은 넘어 보였다. 재적인원은 더 많다고 한다. 앞선 학기에는 수필 반에 다녔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 같지만 나를 간 보기 위한 발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낯이 설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거라는 마음으로 견뎠다. 시 수업을 듣는 것 자체가 커다란 즐거움이며 도전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서서히 가리었던 베일이 벗어지고 어떤 곳인지를 말하는 듯했다. 한 가지 한 가지가 내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어딘가를 다니기로 마음먹으면 큰일이 나기 전에는 빠지지 않는 길들여진 습성 때문에 개근상이라도 받을 것처럼 착실히 수업에 갔다. 수료증을 받을 사람을 물을 때 손을 들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들은 시 공부이니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교실 안에 있는 분들 중 절반의 사람들은 이미 등단한 시인들이었다. 우러러 보였다. 명함을 가지고도 꾸준히 시 수업에 나오며 시를 짓는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내가 너무 작고 초라해 보였다.
한분이 시집을 내서 축하를 하는 자리였다. 그런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시집을 한 권씩 나누어주었다. 제목이 다른 나라 말이었다. 표지는 진분홍으로 곱상했다. 귀로만 듣던 시인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 설레었다.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였다. 쭈뼛쭈뼛 다가갔다. 사인을 부탁했다. 다음 주에 다 같이 해 준다며 미루었다. 머쓱해진 나는 자리에 돌아왔다. 늘 그렇지만 지나면 기회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다음은 잘 없다. 나 스스로도 흥미를 잃어버린다. 다음 주 그 시간 보조 가방에는 시집은 들어있지 않았다. 어리바리 하지만 분위기 파악 정도는 한다. 거기 있는 분들이 다 시인이니 그런 것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만 그저 애달아한 것이다. 도서관에서 시집을 훑트노라면 같이 공부하는 분 이름이 시집에 박혀 있곤 했다.
강의실에는 나이 든 분들이 많았다. 교장선생님 출신에, 의사인 분, 딸기농사를 하는 농부님이 가져온 딸기를 먹으면 연분홍 웃음을 먹는 것 같았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 시라는 어휘 안에 들어와 묶이었다. 나처럼 용감하게 나오거나, 시에 젖고 싶어서 이슬 같은 마음으로 나오는 분도 있었다. 얼굴과 상관없이 마음은 청초하게 피어있었으니 향기가 났을 법도 하다
소개를 하거나 다른 뭔가를 갖는 시간에는 사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찍을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내가 휴대폰 카메라를 들었다. 못 찍는 사진이지만 기념한다는데 목적을 둔다며 개의치 않기로 했다. 지금은 큰 문학제에서 시인으로 발 돋음 한 이가 총무로 살림을 맡아하고 있었다. 어느 날 누구 언니가 사진을 잘 찍는다는 이야기를 얼핏 지나가는 말로 했다. 그냥 자연스레 한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조금 걸렸다. 그 뒤로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그이가 빠지지 않고 나왔기에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보이지 않는 금이 그어진 것 같았다면 약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분도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인만 모여서 시 공부를 한다.
가르치는 분 입장에서는 생자배기 나 같은 사람이 많이 와야 가르칠 맛이 나지 않을까. 가을바람이, 쌀쌀해지는 시간들을 낙엽처럼 굴린다. 시라는 아름다운 보석을 보아내지도, 찾아내지도 못하고 침만 흘리다가 나와 버린 것 같아 씁쓸하지만 잊을 수야 없다. 어느 때인가는 다시 얼굴을 보이고도 싶다.
나를 요리조리 맞춰본다. 아직은 여기나 저기나 이름이 없다. 가능성만을 열어 놓아주는 작은 것들로 만족하고 있다. 가느다란 줄을 부여잡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시는 간짓대 꼭대기에 걸려 있는 잠자리 같아서 수필을 더 가까이하기로 했다. 먼 뒷날에 꽃을 따 보기로 하고 지금은 고개 숙인다. 짧았지만 새로운 장르의 문을 두드려본 고운 시간이었다. 다정함이 묻어나는 나이 든 엉가들 얼굴이 배시시 보여 오는 시반 풍경이다.
* 한 해가 가기 전에 백 편의 글을 채워보고 싶어 엉성할 때도 많았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짬이 안 나서 두어 달 글 올리는 것을 멈춤 하겠습니다. 새해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