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by 민진

새해 첫날에 아직 못 가본 카페를 간다. 시내에서 멀어지니 외길처럼 좁다. 느닷없이 앞쪽에 차가 나타나 한참을 거꾸로 가서 비켜간다.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곳을 다녀오는가 보다. 차 몇 대를 비키고 나니 덧정이 없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다시는 못 올 곳이라고 마음을 삐죽인다. 내려갈 때는 반대편으로 가자고 다진다.


눈이 내리지 않는 계절을 살기에 마른풀 위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얀 것이 그저 반갑고 신기롭다. 지대가 높아 눈으로 내려앉았구나. 산꼭대기를 깎았는지 넓게 드리워져 있다. 평상들이 줄지어 서고 의자들이 가지런하다. 유아들의 탈 것도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니 소풍 오는 장소로 만들었을까.


잎 진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바람이 노닌다. 하늘에 구름들이 한가롭다. 나무가 심긴 땅 위에는 커피가루들이 소복이 쌓여있다. ‘너희들 고생하는구나’ 한마디 한다. 커피는 산성이라서 바라는 녀석들도 있지만 식물들은 주로 중성을 좋아하기에.


건물이 두 곳으로 나뉘어 작은 곳은 마켓이라고 써져있다. 저만큼 큰 데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라고 남편이 알려준다. 셋이서 다 다른 커피를 시킨다. 바구니에 과자도 한 개 담는다. 계산을 하려는데 커피는 그냥 준다고. 그럼 과자를 더 사야 할까요 하자 그래서 주문하기 전에 말을 못 한다고. 미리 이야기를 하면 과자를 많이 사려고 하거나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고 해서. 이 먼 곳까지 왔는데 실내에 들어가지 못하고 추운데 밖에서 마시라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다고.

우리는 올라갈 때부터 차가운 곳에서 마시던지 차 안에서 마실 요량으로 갔다. 커피를 그냥 준다고 하자 두 가지 감정이 어금막힌다. 첫날부터 웬 횡재야! 올해는 재수가 좋으려나. 또 하나는 시작하는 날부터 빚지는 건가. 계속 오라는 것은 아니야. 돋아나는 생각들이 날개를 펴지만 커피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머뭇거리자 다음에 한 번 더 들려주면 된다고 웃는다. 다시 못 올 곳이라고 말한 것이 켕긴다.

엷은 햇살을 의지해 선뜻한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너른 터에 서 있는 나무들과 건물들이 겨울 빛에 파르르 하다. 산의 무늬가 메마르지만 나름의 멋이 있다. 산 아래 도시가 아늑하다. 커피 몇 잔을 팔아야 이곳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오지랖 넓게 별 생각이 든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맞아떨어지지를 않는다.


옹달샘처럼 마시는 것을 파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곳에 오르게 할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진짜 이유는 하늘과 솔향기와 새순들이 눈뜨는 순간을 같이 하는 것. 진달래와 산수유가 살그니 피어나는 동산에 아이들의 웃음이 은방울 소리처럼 번지기를 바라는 순순한 마음으로도 읽힌다. 자신들의 것을 내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돋을새김 하여 다.

저 산 위 소담원에서 향기에 녹아있는 의미들이 커피보다 더 쓰고 달콤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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