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등

by 민진

‘비타민C 천 미리 그램을 하루에 5~6알씩 먹고 비타민D도 구할 수 있으면 꼭 챙겨 먹으세요. 양성일 경우에 진해거담제(가래 약)를 약국에서 구입해 먹으면 확진 후 증상 완화와 회복 속도가 빠르답니다. 트럼프가 먹은 약 성분이 진해거담제와 같은 것이랍니다.’라는 톡이 왔다. 어째 가짜 뉴스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답을 한다. 내가 뭔가를 보내면 가짜 뉴스라고 퉁을 놔서 남편에게 되갚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눈으로 훑는다. 머리로는 면역을 키울 수 있는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고, 몸은 빨래를 말리듯이 햇빛에 소독하고, 기관지에 좋은 것들을 섭취하라는 것으로 바뀌어 읽힌다. 사시사철 빛이 넘치는 곳에서 비타민 D를 사 먹는 것이 맞을까 고개를 갸웃거린다. 남편이 비타민제 노래를 아무리 불러도 기어코 사지 않는다. 비타민은 음식으로 먹어야 된다고 했던 책이 나를 꼭 붙들고 있다. 지금이야 그 의견만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쉬이 변할 것 같지가 않다. 돈도 더 들어가는 것 같다. 귤을 사나흘에 한 박스씩 산다. 막내아들 손이 노란 물이 비친다. 하루에 귤 두세 개만 먹어도 비타민 C가 충분하다는데 도대체 몇 개씩이나 먹는 것일까. 귤을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냐며 쉬엄쉬엄 먹으라고 퉁 거지 하던 사람이 이제는 귤을 아주 잘 사 온다. 비타민을 열심히 먹어야 하니까. 같이 사는 마누라 말보다 효과가 백배 크다.


어느 날 과일을 실은 차가 귤 사라고 외친다. 과일가게에서 한 박스 살 값으로 두 배를 살 수 있으니 뛰어 나간다. 오 킬로그램짜리 두 박스를 안고 오니 부듯하다. 칼로 귤 상자 배를 정확히 가른다. 동그란 귤이 한가득이다. 그 위에 엽서나 편지 같이 새파란 이파리가 새초롬하다. 내 눈이 반짝인다. 노아방주 때 비둘기가 물어왔던 감람나무 잎사귀처럼. 오랜 시간 물 위의 배에 갇혔을 때, 곧 땅이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받아 든 듯하다.


「지난 한 해 수고 많았습니다. 여기 소담하게 담겨있는 귤들도 힘든 한 해를 보냈답니다. 비가 자주 와서 그 좋아하는 해님을 자주 볼 수 없어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무지하게 애를 써서 영글었답니다. 햇살이 스며들어야 단맛이 배이거든요. 어려움을 이겨낸 금빛 열매들이 기특합니다. 얼굴이 조금 못난이가 되었고 신맛이 더합니다. 제주도의 바람과 햇빛과 농부의 땀이 어우러진 아롱이다롱이들입니다. 잎새는 역부로 넣었습니다. 새해를 힘내어 살아가시라는 의미라고 할까요.」


모르는 이를 위해 늘 푸른 잎새를 넣어주는 마음이 풋풋하다. 새록새록 새로운 힘을 내자고 다짐을 해본다. 이런 친절들이 모이고 모여 주위가 밝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냐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비아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기죽지 않고 살짝 집어넣은 상록의 가지 하나 고운 모습을 자아낸다. 나뭇잎 편지를 읽으며 내 안에 초록 등이 켜진다.


그 뒤로 귤을 살 때마다 잎새를 찾는다. 많은 농장들 중에서 한 곳에서만 편지를 띄워 보내온 것일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한 번으로 충분하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초록 잎새 한 개라도 건네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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