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by 민진

중·고등학교를 읍내로 걸어 다녔다. 신작로 길은 차가 지날 때마다 먼지를 피워 올렸다. 산과 들의 모습은 철 따라 바뀌고. 지금은 한 시간 걷는 것이 예사인데 그때는 왜 그리 멀게만 느껴졌는지.

아버지는 복권을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일요일 오전 열한 시에 텔레비전에서 제비뽑기처럼 추첨을 했다.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분위기를 한껏 달뜨게 한 다음 공을 굴린다. 동그라미가 돌고 돌다가 붙들려 나온 번호가 상금을 결정짓는 운명의 숫자였다.

아버지의 복권은 끝에서 두 자릿수 이상은 맞은 적이 별로 없다. 안 맞으면 괜스레 내가 잘못 사 와서 그런 것 같다는 죄책감이 송골송골 올라왔다. 언제부터인가 도박인데 아닌 듯 자연스럽게 부추겨지는 분위기다. 고대에서부터 카지노가 있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는 본성을 부채질하는 것일까. 행운에 기대는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는 크면 절대로 복권의 복자 근처도 안 갈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아들이 로또 계산 프로그램으로 계절학기 숙제를 했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로또는 멀리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기는 안 사는데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사장님과 직원들 모두 산다고. 잘 되는 것 같냐니까. 삼등 안에 들어야 돈이 좀 되는데 아직까지 그런 것 같지 않다고. 돈 아까워서 어째! 하자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걸 사서 일주일을 기대감으로 즐겁다는 것이다. 일 이등을 만들어낸 먼먼 가계에까지 찾아가 사 온다고 한다. 한두 장 사느냐고 묻자 열 장씩 산다고 했다. 한 달이면 이십만 원이란 돈이. 내 것처럼 아깝다. 꼭 되어서라기보다는 활력소가 된다고. 쓰라린 속내의 합리화가 아닐까. 로또 판매점 앞을 지나는데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꼬리가 길다. 다들 힘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작가님이 올린 글에서 소제목으로 ‘로또 같은 아내’란 글을 읽었다. 치닫는 무한한 상상력이라니. 요즘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는 것이 티브이에 자주 나온다. 방송사는 그런 분들을 바람 따라 찾아다닌다. 나는 침을 꿀떡꿀떡 삼킨다.

인터뷰어가 찾아간 집의 남편에게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 짧은 시간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로또가 당첨된 다음의 꿈을. 모든 것이 되어주는 아내, 사랑스러운 꿈결 같은, 희망과 미래가 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 남편이 어렵지 않게 대답을 툭 던졌다고 작가는 말한다.


로또예요. 무슨. 안 맞아요, 너무 안 맞아요. 이 말을 읽을 때 코미디 프로그램의 개그맨이 감정을 한껏 이입해서 하는 말로 들려왔다. 배꼽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한 상상력이 무참히, 처참히 깨어지므로 크게 웃었다.

아들에게도 재미있으라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써먹어야겠단다. 결혼도 안 했으면서 뭘 안다고 저러지. 청년 때 열 가지 중 세네가지만 맞으면 결혼을 하라고 했다. 맞추면서 살아가것이라고.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제대로인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밥때만 되면 뭔 이야기든지 하느라고 바빴다. 남편과 아이들은 별 말이 없어서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다했다. 혹 꽹과리를 칠 기회를 안 준 것은 아닐까.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남편은 밥 먹을 때 말하면 복 떨어진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 아버지의 자식들인지 아이들도 적막강산일 때가 많았다.

이제는 긴 시간을 둘러와 둘이서 아침을 먹는다. 말없이 끼니를 마칠 때가 있다. 식당에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이들은 연인 사이고 아무 말 없이 밥만 축내는 그들은 부부라는 오래된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부가 맞나 보네요 하니. 응! 말 좀 해보세요. 네? 대답했잖아. 한다.

같이 잠자고 밥 먹은 시간이 서른 해인데 우리는 아직도 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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