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귤은 바닷길을 건너왔는데

by 민진


올망졸망한 것들이 자리가 좁다고 투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십 킬로라는데 들어보니 제 무게보다 훨씬 많이 나가는 것 같다. 탱글탱글한 귤 한 개를 까서 입안에 쏙 넣는다. 새콤달콤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서울에 사는 친구한테서 온 귤이다. 웬 것이냐니 오빠가 농장을 하는데 생각나서 보냈단다. 같이 공부할 때 보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그 친구가 고향이 제주도인 것을 잊어버렸다.


아름다운 곳이 고향이이서 좋겠다 했더니 엄마는 둘째 아이 낳고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칠팔 년 됐단다. 부모님이 계시는 사람들이 부럽다며 일 년에 한 번 정도 형제들 보러 비행기를 탄다고. 부모님이 없는 고향은 어떤 곳일까.


이모 딸 혜진이는 나보다 어린데 결혼을 빨리했다. 아들 둘 낳고 이모에게 잘한다고 어머니의 칭찬이 자자했다. 딸 하나라 그런가 했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학교로 찾아다니자 전 남편이 그것도 못하게 막았다 한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그랬는지, 제주도로 시집을 갔다. 아른거리는 아이들을 잊어보려고, 새 사람들과 새로운 삶에 맞추기 위해 애썼다. 열심히 살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몇 년간 병원에서 숨만 쉬었다. 차도가 있자 고향에 다녀갔다. 그리고 꽃잎 지듯 졌다. 이모에게 그렇게 잘하더니 먼저 가려고 그랬을까.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오지 못했다.


이모는 하나 있는 딸을 잃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월은 무심한 듯 가고 삶은 이어져가야기에 살아지는 것이지 않을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어서 세월이 가고 무뎌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아야 할 텐데.


친구에게 귤껍질 차를 만들어도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무에서 바로 따서 보낸 것이라 싱싱할 것이라며 약을 거의 안쳐서 깨끗이 씻어버리고 하면 된단다. 귤 따러 다녀온 분 이야기를 들으니 나무에 치는 약보다는 포장할 때 왁스와 방부제가 더 안 좋다고 했다.


귤 한 상자를 너른 대야에 몽땅 붓는다. 또르르 구르면서 동그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씻어 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뺀다. 샛노란 귤들이 얼굴을 씼으니 더 새초롬하다. 식구들에게 귤껍질을 모아달라고 부탁하여 막내와 같이 잘게 썰어 건조기에 말린다. 차로 우려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기에.


징검다리를 건너온 귤 속은 유리 빛같이 투명하다. 알맹이는 알맹이대로, 껍질은 껍질대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잘 말린 귤껍질을 찻물로 우려내어 마실 생각을 하면 벌써 마음이 따스해진다. 귤은 동생이 잠시 살다 간 땅에서 바닷바람과 햇살과, 비로 영글었다. 귤은 바닷길을 건너왔는데 이제는 올 수 없는 혜진이. 애틋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노란 귤빛 속으로 보여 오는 해사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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