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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Feb 14. 2023

눈 오는 날

    온도를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다. 수국 꽃눈이 얼지 않도록, 추위에 약한 나무들이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영하 몇 도로 내려가는지에 민감하다. 부직포 덮개만 씌워주어도 될 것인지, 촛불 한 자루를 켜둘 것인지, 두 자루를 밝혀야 할 것인지 가늠해야 한다. 초 한 자루가 열을 내면 얼마나 낼까 싶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화초들이 견딜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에 따라 식물을 거실과 방과 하우스로 구분하여 놓았다. 그 가운데서도 견디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난다.

 

  아침에 안내 문자에 대설이라는 말에 놀란다. 큰 눈이라고 할 만한지 의아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에 대설이라고 한 것을 봐주기로 했다. 긴 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밀치고 나가 본다. 삼사 센티 눈이 쌓인 것 같다. 꽃들이 사그라지고 대궁만 삐죽거리는 화분에 그릇그릇 눈이 쌓여있다. 그나마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나무들이 아기 장난처럼 눈 이불을 둘러쓰고 있다. 혼자서 빙긋거리며 눈을 치운다. 눈이 내린 뒤에 비를 좀 뿌렸는지, 눈비가 왔는지 뽀드득거리기보다는 아이스크림을 꺼내놓아 녹아들고 있는 것처럼 사그락 거린다. 잘 못하다가는 미끄러질 수 있겠기에 물먹은 눈을 한쪽에 무더기로 쌓는다. 고양이 세수하는 것처럼.

 

  선물처럼 눈이 내리면 수목원에 가기로 남편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아홉 시 문 여는 시간에 딱 맞추어 들어가면 눈꽃들이 펼치는 장관과 아무도 밟지 않는 눈밭에 발자국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눈이 내린 것이다. 하늘에서부터.

  내 마음과 다르게 남편은 아는 청년 병문안을 하고 가자며 나선다. 한숨은 속으로 삭인다. 안타까운 마음을 누른다. 어쩌면 체념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해가 빛난다. 눈빛에 반사된 대기는 원래보다 훨씬 더 밝다. 눈이 부시다. 실제로 비닐하우스에서는 은박지를 놓아 반사시켜 빛 효율을 높이기도 한다. 눈에 빛이 반사되어 세상이 환하다. 내 마음도 눈부시고 싶은데 늘 뜻대로 지 않는다.


  발 동동 구르듯이 마음만 구른다. 그래도 간다는 것이 어딘데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늘 무언가 비켜서 살아가는 것 같은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절정은 벗어나 주변의 것으로나마 위안받고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억울한 마음도 이제는 다독일 줄 안다. 빠른 체념이 정신적으로나 서로에게 더 낫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 샘이다. 예전 같으면 입이 댓 발 나와 남편에 대한 불만이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었다. 그렇지 않으려면 자괴감으로 가슴께나 문지르곤 해야 했다. 나 자신에게 화살을 던지는 것이 상황을 극복하는데 덧나지 않은 수임을 알았던 것이다. 이제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긋하다. 여름의 격정을 이겨낸 가을의 여유로움은 아닌지.

 

  한 시간가량 늦게 출발했다. 유난히 밝은 햇빛에 눈 물을 줄줄 흘리는 산, 들, 길이다. 저 빛나는 해를 몇 시간만 구름 속에 집어넣어 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늘은 오늘따라 왜 이리 예쁜지 감격스럽다. 침엽수들이 모여 있는 곳에 눈 쌓인 풍경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눈 이미지가 떠오른다. 청소년기에 읽었던 『빙점』에 나왔던 끝도 없이 펼쳐지던 눈벌판. 또 영화 ‘사자 마녀 옷장’ 마녀에 의해 겨울이 가지 않고 눈만 내리는 겨울왕국의 모습이다. ‘사자 마녀 옷장’ 영화에 나온 세트장에 내린 눈은 스티로폼을 가루로 만들어 뿌렸다는 것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실망이 되었다. 어린아이들이 연기하기 위해서는 춥지 않아야 했기에 그랬다고. 진짜 눈 세상에서 찍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번졌다. 그 많은 플라스틱가루들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산 하나를 통째로 발이 푹푹 빠지게 뿌려대었으니. 영화를 보며 춥게 느껴지던 것은 내가 경험한 것으로부터 와지는 뇌의 작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한테 속은 것 같았다. 신비감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백 미터 미남이 있듯이 모든 것은 조금의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하긴 영화 자체가 판타지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식물원에 도착했는데 기대했던 것들은 내려놓아야 했다. 벌써 눈이 녹아내리고 있다. 아쉬운 대로 후원 같은 곳을 사부작이 걷고 메타세쿼이아 길을 산책한다. 눈싸움을 하면 좋을 것 같은 너른 광장을 마주한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을 뭉쳐 남편에게 던지거나, 남편 목덜미에 집어넣고자 하는 열정은 시들해진 지 오래다. 거니는 것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두 군데의 커피 집에 사람이 없다. 눈이 잘 오지 않는 지방이라 눈길이 겁나서 아예 출근을 하지 않은 것 같다. 기념하는 사진을 몇 장 남긴다. 하얀 세상을 더 붙들어 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시 몇 년을 또 기다려야 할까? 안타까움이 배가되는 눈 오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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