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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Feb 18. 2023

자신감과 교만사이

    아들이 교환학생으로 나가려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여의치 않게 되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여행을 갔다. 저 좋아하는 축구팀 경기도 보고 티도 사 입고 이곳저곳을 둘러왔다.

 해리포터를 촬영했던 호그와트행 9 3/4(킹스 크로스 세인트 팬크라스역)을 프랑스 파리로 자리를 옮기기 전 그 근처여서 들렀나 보다. 거기서 해리포터가 사용하던 지팡이를 여동생을 주려고 싸지도 않은데 샀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왔다. 작은 선물들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아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 남편에게 여비 조금 보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럴 필요 없다고 단칼에 잘랐다. 나 혼자 맛있는 것 사 먹으라며 조금 보태주었다. 그런 데서 남편과 나는 늘 생각이 어긋난다. 아들이 벌어서 가는 여행이지만 작으나마 마음을 얹어주면 훨씬 기분 좋고 응원받는 느낌이 들것도 같은데. 아들에게 차마 아빠가 돈 보내지 말라고 했단 말은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명화가 그려져 있는 책갈피 몇 개를 사 왔다. 안 그래도 책 읽을 때 필요했는데 잘 됐다 싶어 고마웠다. 남편에게는 에펠탑 모형과 동생에게는 축구단 티. 다 같이 나눠먹을 수 있는 초콜릿을 핀란드 헬싱키 공항에서 샀다며 가져왔다. 초콜릿 갑의 디자인이 괜찮다고 했더니 여동생도 해리포터의 지팡이엔 별 관심이 없고 케이스만 살피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초콜릿 상자도 딸에게 보여야겠다며 잘 두었다.

 

  작은 딸이 왔다. “오빠가 초콜릿 사 왔는데 포장지 버리지 않고 두었어. 네가 해리포터 지팡이보다 상자에 더 관심을 보였다길래.” “지팡이 내가 더 잘 만드는데 그 비싼 것을 왜 사와. 맛있는 것 한 가지라도 더 사 먹지!” 할 말이 없다.


  딸은 대학교를 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아르바이트로 자립으로 살아갔다. 디자인에서부터 나무를 깎고, 그림을 직접 그려서 판매했다. 공부를 실전에서 써먹은 이다. 해리 지팡이보다 훨씬 비싸게 판 것으로 알고 있다. 창작품이니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곧 지팡이 전시회를 할 거라 한다. 몇 개정도 전시할 것이냐고 했더니 백여 개 정도란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일일이 다시 만들어 보이겠다는 것 같은데 무슨 의미인지. 몇 개의 지팡이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동생에게 도움이 되라고 지팡이를 사 왔으니 맘에 들 리가 없긴 하다. 가볍게 생각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수 있. 그럴지라도 지팡이 이야기가 시작된 곳에서 왔으니 오빠의 마음을 살펴주면 안 되었으려나.

  

  지팡이라지만 지휘봉 크기만큼의 판타지 세계의 것이다. 요정이나 마법사, 마녀가 등장한 데서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더 판타지의 세계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마법이 펼쳐지고 있는 세상을 가끔 꿈꾼다. 실제로 내가 맛보는 마법의 세계는 주로 식물에서 다. 가시 같은 잎을 가진 것에서 어쩌면 그렇게 예쁜 꽃들이 피어나는지, 레이스 같은 이파리 밑에 땅속으로 당근이 곧게 뻗어 나는 것도, 꼭대기에 있는 옥수수 수술에서 수염인 암술로 꽃가루를 떨어뜨려 수분수정이 되어 노란 옥수수 알갱이가 영그는 것도 그렇다.


 가끔 하얀 편에 선 진짜 마법을 부릴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마법용품을 딸이 팔고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마법을 부려볼 수는 없을까. 사실은 지팡이 한 개도 없다. 보는 것마다 욕심은 났지만 한 개도 주지 않았다. 사진만 몇 개 보내준 것이 다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지팡이를 사는지 의아했었다. 사고가 말랑말랑하지 않으니 이해의 폭이 좁다.


  꽃다발을 보고 먹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만 생산하는데 꽃은 왜 사 오냐는 친구가 있었다. 아직도 먹는 것과 이어지는 우리의 정서 때문인지 몰라도 꽃 농가가 거반 스러졌다는 소식은 진즉에 나돌았다. 절화 꽃은 거의가 수입에 의존하여 비행기로 실어온다. 꽃을 보면 신비롭다. 고운 것으로, 예쁘다는 생각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꽃은 위로의 마법이다.

 

 젊은 세대는 자신을 위하여 무언가를 사주고 싶다.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고 하던 광고 카피처럼. 뒤집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주부가 쌔고 쌘 그릇을 놔두고 예쁜 그릇을 사는 것이라든지, 사람들이 옷이 없어 새 옷을 사는 것은 분명 아니다. 나도 사고 싶은 꽃나무가 줄을 서서 기다린다. 여의치 않아 살만 할 때를 엿보고 있을 뿐.

 

  딸이 나에게만 말했겠지만 아마 표정에 다 드러나지 않았을까. 눈치 없는 오빠이니 잘 모를 수도 있다. 혹여 여행을 또 가게 되면 국물도 없을지 모른다. 딸이 오빠의 진심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만나니 허물이 없어 그랬을 수도 있다. 여비 한입 보태주지 않았는데 선뜻 비싼 선물을 사 왔으니 미안해서 그랬을지. 그럴지라도 딸의 자세는 자신감과 교만사이 어느 부분쯤 자리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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