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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Feb 25. 2023

  포만감 2

  카카오 톡 정원가 방에 열여섯 개의 알림이 뜬다. 아침부터 뭘까. 열어본다. 지난해 시에서 뽑은 아름다운 정원에 든 카페 주인의 긴급을 요하는 에스오에스. 은행나무 두 그루 사진과 동영상이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죽어가는 중이라 가지치기를 하고 사 년 전 데크를 둘러놓아 숨을 못 쉬어 그런가 싶어, 숨구멍을 뚫었다는 이야기이다. 큰 화분이 네다섯 개 들어갈 만큼 바닥을 잘라내어 정리가 안되어있다. 은행나무와 데크가 무리 없이 뚫어놓은 공간을 메울 조경수로 어떤 것이 좋으냐는 물음이었다.


  조경학 교수님께서 먼저 축복처럼 카페의 아름다운 봄 정원을 기대한다는 말과 정원가 모임을 그곳에서 가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사장님은 흔쾌히 좋다고 답한다. 나도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교수님이 되기 전 조경 업을 했을 때 서울 교보빌딩 건물 앞의 단풍나무가 계속 죽어 공사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문제가 없었다는 , 은행나무가 시름시름하는 것은 과잉수분일 가능성이 높다고 방법을 제시했다. 앞을 내다보고 물을 좋아하는 나무를 키우면 언젠가 은행나무를 대신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언도 같이다.


  다른 조경가께서도 같은 진단을 내린다. 데크의 옥죄임이나 통풍이 안 되어 그러는 것 같지 않다며, 은행나무가 과습에 약하다는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곧 가까운데 사는 나무의사 선생님과 함께 들러보겠다면서  마무리되었다. 나무의사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이 어려움에 놓였다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겠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아직 모른다. 아마 나무를 진단하고 약사가 약을 처방하듯 은행나무 살리기는 진행형이 되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두 그루 은행나무는 살아날 것이다. 오십 대의 나무가 하루아침에 훅 가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 정도 세월을 살아냈으면  처방들이 먹혀들어 다시 잎을 내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암수나무가 구분되어 서로 쳐다보아야지만 열매가 맺힌다. 그나마 요즈음은 암수나무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어 아예 숫 나무만 심는다고. 열매가 맺히지 않고 노란 은행잎만 보기를 원한다.


  두 해전 가을 ‘사라지지 않는 달 십일월’이란 글을 브런치에 올렸었다. 그때 찍었던 은행나무 사진에도 잎이 건강하지 않았다. 샛노랗게 물들지 못하고 노란 것도 아닌, 그렇다고 초록도 아닌 그 어디쯤의 묘한 색이라고 해야 할까. 실망한 나는 우중충한 날의 연속이라 그런가  었다.

 

  가을이 되면 활엽수들은 겨울을 준비하느라 잎에 있던 양분들을 남김없이 나무 몸통으로 들여보내고 자기를 비워낸다. 그리고 미련 없이 훨훨 떨어져 내린다. 크는 것도 멈추고 숨만 쉬는 인내의 시간을 맞이한다. 찬 겨울 얼음이 되고 봄이 오면 땡 하는 나무시계가 째깍인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뒷마당의 안주인 같았다. 돌아보면 그때부터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나무는 말을 못 하니 잎으로, 줄기로 신호를 보내는데 얼른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작은 나무들이야 금세 표시를 내지만 덩치가 있는 나무들은 쉬이 내색하지 않는다. 혼자 끙끙 삭이다가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아픔을 내보인다. 나무가 버티느라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어 짠하다. 공부할 때 동물이나 식물이나 어느 정도까지는 유전자 분열이 비슷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 한분이라는 것을 더 깊이 느끼기도 했었는데.

 

  카카오 톡 방에서 사실적인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보면 호기심이 가득해진다. 이론으로만 대하던 것들을 직접 체험하는 듯 뿌듯하다. 다는 이해 못 하지만 감은 잡는다. 지식을 뒷받침하는 배가 부르다. 새롭게 뭔가를 알아갈 때의 즐거움을 무어라 해야 할지.

 

  카페가 뒤 두충나무숲까지 너르게 끌어안았다. 잎 하나 없이 오롯이 견디고 있는 은빛 숲이 아직은 말이 없다. 가녀린 듯 꼿꼿하다. 어느 사이 정원에는 물오른 나무들과 올망졸망 꽃들이 새처럼 지지배배 노래할 것이다. 때때옷 입은 아가처럼.

  쌍둥이 같은 은행나무도 서로 의지하여 나비 날개 같은 잎을 피워내기를 빈다. 나무가 쉬이 목숨을 거두지 않고 생명줄을 잘 붙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은행나무는 겨울잠에서 느지막이 깨어나는 잠꾸러기다. 그러다 순간 수많은 나비 떼로 후드득 날아오른다. 눈웃음이 쳐진다. 연둣빛의 속살이 나비날개가 되어 한꺼번에 팔랑 거릴 생각을 하면.

  가만가만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꽃과 나무를 눈과 마음으로 담아내어 포개면, 포만감으로 가득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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