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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Mar 10. 2023

진달래꽃

  진분홍빛 꽈리처럼 봉긋하니 부풀었다. 맨몸으로 한데 있던 것 중에서 가장 먼저 꽃 오름을 했다. 나무의 잎눈이나, 꽃눈을 보고  다음 이어질 순간들을 떠올려 보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좁쌀 만 한 애기 눈들이 둥그러지며 야리야리한 이파리로, 꽃으로 비집고 나온다. 살며시 꽃 방울이 부풀고서도 한참을 인내해야 한다. 설날을 기다리는 아이가 된 것과 비슷하다. 시간과의 줄다리기. 소중한 것들은 기다리지 않고 쉬이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던가.


 지난해 여름 진달래나무가 병을 했다. 희끗희끗 어룽어룽. 저러다 봄이 오면 꽃이나 보여 주려나 걱정이 되었다. 시원찮은 꽃 지기여서 그러는지, 나무들이 말없이 떠나기도 한다. 옛날 말에 저 싫으면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숨을 내려놓는 것들이 있다. 아프지만 연이 아닌가 보다고 마음을 추스른다. 추워서 보낸 것인 줄 알았더니 물을 주지 않아 말리기도 한다. 나무들이 목마르다고 소리를 칠 수 있다면. 죽어 있는 나무를 만져보면 뻣뻣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 주기만 잘해도 식물들은 거의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벌레나 곰팡이보다는 목마름으로 떠나기 일쑤다. 물 주기를 잘하려고 하지만 때때로 때를 놓친다.   

 막무가내로 꽃나무들은 스스로 병충해를 이겨내야 한다는 아집이 동전의 양면처럼 내 안을 차지 했었다. 상식이 있는 것 같으나 무식함도 같이한다.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여러 생명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내아는 것이 다인 것처럼 무대보가 되기도 한다. 생각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행동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 같다. 내손을 타는 것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잘 살아가야 한다는 규칙을 정해놓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고집. 다행히 식물을 키우면서 내려놓는 법을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봄이 오면 앞산이 온통 연분홍으로 화사했다. 어린 눈에도 신기하여 멈추어 한참을 바라보던. 들불처럼 번져가던 분홍물결이 어느 순간 산을 메웠다. 초록이 끼어들지 못하는 단아한 빛의 잔치였다. 꽃 몸살부터 해대던 동산. 그때의 기억이 웬만한 진달래꽃밭으론 성에 차지 않는다. 진달래꽃잎을 따서 먹던 시절이었다. 입술 주위가 불그죽죽하기도 했다. 약간의 떨떠름한 신맛이 가볍게 느껴지던. 색깔과 맛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진달래 꽃술을 담았다. 그때  먹을 것 외에는 생각이 와닿지 않은. 소꿉놀이도 할 수 있고, 병에 꽂아 봄을 앞당겨도 되었을 텐데. 의식주에 머물러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던 가난한 시절이었는지도.

 길 가다가 가로수 아래 심긴 꽃 배추를 보았다. 아마 꽃대를 올리는 중이리라.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닮았다. 감탄을 하면서 사진을 찍자 남편이 하는 말, 상상하는 것이 먹을 것에만 머문다고 핀잔을 주었다. 아직도 바라보는 시점이 먹을 것으로만 이미지화되는 것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같은 세월인지.

 

 꽃잎 몇 송이만 따서 꽃전을 부칠까. 어린 쑥이나 배추꽃 유채꽃으로는 꽃전을 해보았지만 진달래 꽃전을 해본 기억이 없다. 산까지 가서 꽃을 따오기 번거로워서 그랬는지, 삶에 여유가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다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진달래로 꽃전을 부쳐 잔치하듯 한다. 그 조개 컵 같은 찻잔에 병아리 눈물만큼의 차와 어우러진 진달래 꽃전을 우아하게 먹는다. 부러움 반 질투 반의 감정을 느낀다. 아직도 내겐 촌스러움이 배어있어서인지, 차 한 잔을 마시는데 그렇게 온갖 정성을 들인다는 것을 사치라고 여기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다도의 ‘다’ 자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것에 멋이고, 맛이고 다 다른 것이 삶의 방식인데. 정답도 없을뿐더러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것이 살아가는 의미일 것이다. 입 다실 것이 생기면 차가 어우러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무엇인가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채워지지 않은 정서가 있다고 보아야 할지도.

 

 첫봄에 첫 꽃 진달래가 피었다.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은 분홍이다. 산에서는 거닐면서 보는 것이 다였다. 가만 한참을 들여다본다. 꽃이 어쩜 저리도 참할까. 그래서 참꽃이라고 했나. 진달래는 온산 가득 무리 지어 피어야 존재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있는 두 구루의 어린나무만으로 도 추억을 불러내기에 넉넉하다. 목 축이는 정도지만, 꽃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께가 저릿하다. 꽃 지는 날까지 가끔 다소곳하게 그 앞에 서보련다. 찬 계절을 이겨내고 맨 먼저 피어준 진달래꽃을 바라보는 것도 나에게 차 한 잔 대접하는 여유로움이지 않을까. 그리하여 내 마음도 꽃빛으로 물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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