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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Mar 17. 2023

매화가 피어야 봄이 온다

  섬진강에 매화 꽃잎 띄워 어디로 보낼거나. 향기는 바람결에 실어 누구에게 부칠까. 숨 쉴 수 없이 줄기와 나무둥치, 겨드랑이에 매달린 꽃송이들이 몇 억 만송이나 될까. 헤아릴 수 없어 매화마을이다. 축제의 마당은 낼모레 펼쳐진다는데 미리 들렀다.


 열 개라 치면 일고여덟은 피어나야 만개라 한다. 아직 만개라고 하기는 이르다. 다소곳하게 머금고 있는 아련한 꽃 봉오리의 자태는 비밀스럽다. 살짝 오므린 입인 양, 살며시 감고 있는 눈동자가 꺼풀에 가리어진 듯하여. 화들짝 놀란 것 마냥 눈이 뜨이면 어찌할 거나. 그대로 가만있어도 될 것만 같은 고고한 자태에 마음이 먼다.


 조붓한 길을 따라 피어난 매화들이 너럭바위에 기대어 있다.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다. 산자락에 매화를 심고 가꾸었을 손길이 다시 한번 돌아보아진다. 매화는 바위에도 봄을 걸쳐놓았다. 향기는 담장을 따라 퍼지다가 흩어져간다. 섬진강에 매화꽃잎 떨어져 어디로 흘러드나.


  광양 매화마을에 가까이 살게 된 지 서른 해가 넘어 들렀다. 오가는 길에서 조금만 비켜서 가면 매화꽃 잔치가 열리는데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매화꽃이 필 때 면 어머니를 늘 찾아뵈었다. 남편 고향집에 핀 매화꽃이 내게는 봄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집에 오기 바쁘고 새삼스레 매화만 보기 위해 어딘가를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머니 나이의 골이 깊어질수록 매화꽃이  흐릿한 색으로 피어났다. 매화꽃이 다 그런가 싶었다. 가물거나 양분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을 못했었는데. 알알이 연초록으로 영글던 매화열매도 자루에 차는 것이 보이게 줄어갔다. 오월 말에 매실을 따서 형제들에게 보내고는 했는데 차차로 그러지를 못하게 되었다. 가물면 물도 주어야 하고 약도 한 번씩 쳐야 되는데, 천수답처럼 비가 내리지 않으면, 진디가 끼고 병을 하여 기한 전에 열매가 후드득 소리를 내었다.

 

  당신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어지는데 매화꽃이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은 훤화지만 몸이 따라주지를 않은 세월. 자식으로서 더 세세히 살피지 못했던 부분이 아쉽고 죄스럽다. 시간을 지나와야지만 들여다보이는 것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반성문을 썼다고 행동이 얼른 바로잡아지지 않는 것처럼 시간을 되돌린다고 잘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후회하며 살아가는 동물인가. 은혜가 필요해지는 부분인지도. 곁에 있는 이들에게 잘하는 길만이 사랑의 빚을 갚아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얼음 동동 띄어 마시던 매실차를 아이들이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둥지를 떠난 새들이 되어 포르르 날아가기도 했지만. 매실차 보내준다고 해도, 오랜만에 집에 오면 매실차 타 줄까! 물어보아도 너무 달다고 고개를 젓는다. 커다란 유리병에 담긴 매실액은 몇 년이 되어도 줄지를 않는 것 같다. 음식은 여럿이서 먹어야 맛인데 그 맛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매실식초를 만들어 샐러드소스로 조금씩 사용하고 있을 뿐.

 

  매화가 피어야 봄이 온다. 수양매화는 선을 있는 대로 늘어뜨린다. 봄은 기억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수도 없는 매화꽃잎에다 마음을 수놓아 흘러 보내고 싶다. 어딘가에 닿아 그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싶지만, 보내는 마음만으로 너무 충분한 삶을 살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나의 봄은 매화가 피어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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