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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Mar 24. 2023

풀꽃들은 언제나 진심이다

  바람이 불자 그 가녀린 꽃대가 하늘거린다. 여운에 마음을 빼앗기고 어쩔 줄 모르고 서성인다. 눈물 같은 꽃을 그리워한 지가 언제부터였는지. 나이가 들어서부터인데 그 말이 주는 경계가 모호하다. 중년을 지나 노년에 들어서는 길목이라면 맞으려나. 봄은 여리 디 여린 것들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작디작아서 어루만지듯 바라보아야 한다. 어쩌면 내가 작아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안개꽃 같은 흰꽃을 봄맞이꽃이라고 알려주면 어디서 많이 본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무슨 잡초를 키우느냐고 설핏 웃는 것 같기도 하다. 야생화가 다 들에 산에 자라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인데. 그것들을 집에 가져다 심으면 잘 자란다고 쉽게 생각하면 맞지 않다. 그네들이 자라는 거칠고 메마른 곳에서 자자손손 뿌리를 내리고 풀꽃으로 살아왔기에 환경이 바뀌고 거름기가 많은 흙에서는 쉬 자리 잡기를 어려워한다.


  작년에 토분으로 된 큰 분재화분이 봄맞이꽃으로 환했다. 흰 빛깔의 꽃무리가 주는 깨끗함과 순수함이란 아는 사람만이 안다. 아깝지만 당근에 내놓았다. 유럽 봄맞이까지 수입해서 판매하는 마당에 우리 봄맞이꽃 알림이로 자처하고 싶었는지. 두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먼저 문자 한 분과 다음 날 약속을 잡았다. 그 시간 기다리는데 오지 않았다. 오는 중이냐고 묻자 깜빡 잊어버렸다며 계좌를 주면 돈은 먼저 보내고 꽃은 내일 가지러 오겠단다. 다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한심했다. 몇 푼이나 번다고. 내 꽃 내가 실컷 키워 또 시간을 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

 

  돈을 그렇게 가볍게 보면 안 되는데. 딸이 서울서 오천 원짜리 당근 거래를 할 때, 비 엠 더블유를 몰고 와서 천 원을 더 깎는다고 했다. 시세보다 싸게 팔고 사는 것이 당근 시장의 모습 아니던가. 생각해 보니 내가 더 적극적이어야 했다는 아쉬움. 만나기 전에 바람맞지 않도록 미리 손을 써야 했다. 너 아니면 임자 없는 줄 아느냐는 얄팍함도 얕아 보여 그렇다. 두 번째 연락 온 이와 이야기했다. 화분도 같이 주느냐는 것이었다. 아마 그이는 화분 값만 쳐도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일이 늦게 끝난다고 대문 앞에 가져다 놓으면 안 되느냐고. 양보를 안 했더니 일이 이렇게 나아간다. 일 마치고 계좌로 돈은 보내겠다고. 첫 번째 약속한 사람과 한 깜냥이 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집에까지 가져다주었다. 대문 밖에까지 나무를 많이 키우고 있었다. 들꽃을 살만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당 안을 들여다본 것이 아니므로 뭐라 할 수는 없긴 하다. 나도 요새 나무에 열을 올리면서도 가녀린 것에는 그대로 마음이 엎어지는 것을 보니. 봄맞이꽃으로 이루어낸 나의 당근 첫 거래 내역서이다.


  늦봄 다시 새봄을 준비하느라 화분 이곳저곳에 먼지 같은 꽃씨를 바람에 날리듯이 흩날렸다. 이른 가을에 앙증맞은 싹들이 흙을 밀고 수도 없이 올라왔다. 잎사귀들이 아기 손 같았다. 늘 문제는 똬리를 튼다. 튼튼하게 자라라고 인심 쓰듯이 겨울에 유박비료를 여린 싹 화분마다 올려주었는데 봄맞이 어린것들이 독한지 거지반 뿌리가 썩어버렸다. 꽃을 보려는 부푼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어쩌다 다육을 심었던 콩 분에 떨어진 씨앗이 발아해 자라던 것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 거름기 없는 박한 곳에서 꽃을 피워낼 수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물만 주면 되는데 거름까지 챙겨주어 더 우람한 봄을 기대했던가. 욕심은 생각한 것을 여지없이 부정하게 한다. 놀고 있는 분이란 분마다, 나무 밑마다에 봄맞이꽃으로 수도 없이 단장하려고 했는데. 기대는 피지도 않은 꽃잎 지듯 온데간데없다.

 이 봄 겨우 콩 분 한 개와 플라스틱화분 귀퉁이에 뿌리를 내린 녀석으로 목마름만 겨우 면했다. 이제는 그냥 바람에 풀씨처럼 날려 어느 화분에 떨어지든지 자연스러움에 내어 맡겨 놓아야 하려나.

 

  작은 것들이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봄이다. 아무도 듣지 않은 것 같으나 어딘가에서 봄을 노래한다. 굳이 바라보아주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듯 작은 것들끼리 키 재기하며 바람을 맞는다. 자리를 지키고 서서 씨를 더 만들어 영역을 넓혀 나간다. 여리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그곳은 머지않아 풀꽃 차지가 될 수도 있다. 시멘트 틈새, 돌 틈, 아스팔트 금 간 곳도 마다하지 않는다. 풀꽃들은 언제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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