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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Apr 29. 2023

이상한 날

   브런치스토리 작가 중 소설을 쓰는 분이 있다. 처음에는 읽기 힘들었는데 어느새 거기 빠져 들었다. 주인공 이름이 ‘지율’이다. 여형사로 나온다. 그 소설을 읽다 보니 ‘지율’이란 이름이 여자이름으로 내게 자리매김했다.

 씨앗파종을 해 놓았던 봉숭아와 바질이 자라 개별 화분에 옮겨 심었다. 거기에 식물교실에 들어가기로 되어 ‘테디베어’ 해바라기를 당근시장에서 샀다. 비 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옮겨 심고 비를 맞혔더니 생긋생긋하다. 좁은 마당이 더 비좁아졌다. 공간 정리를 잘 못하기도 하지만 자꾸 늘리기만 하고 내 보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한련화와 호주매화 백결, 로즈제라늄을 당근에 내어놓았다. 한련화는 식용 꽃으로 잎이 시원시원하게 연꽃잎사귀를 닮았다.

 올리자마자 지율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부터 거래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 진주도 아니고 하동이란다. 이것 때문에 오지 말고 진주 나올 일 있을 때 가져가라고 했다. 오늘 나올 일이 있다며 절에 심을 거라고 다. 그럼 꽃집에서 비싼 것으로 사면 될 것인데 굳이 당근에서 저렴한 것을 사지. 이걸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개신교도인 내가 키운 꽃이 절 마당에 심긴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할까. 떨떠름했다. 팔겠다고 내어놓은 사람이 신앙 때문에 팔까 안 팔까를 고민한다는 것은 옹졸하고 이분법적이다. 화초 몇 개 팔면서 상도에 어긋난다고 매듭을 짓다니. 생각으로야 무슨 생각을 못할까. 작은 물건을 내어놓고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것에 웃음이 났다. 그이가 오늘 있는 약속이 취소되면 수요일에 온다기에 그날은 내가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럼 금요일 장 보러 나오는데 어쩌느냐고 묻는다. 금요일로 약속이 잡힌 줄 알고 추적추적 비가 오기에 흙일을 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비 오는 날, 꽃들을 작은 분에서 조금 큰 데로 옮겨주면 꽃들이 신바람이 난다.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큰 분을 원하지는 않는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들에게는 작은 분에서 살아야 낫다. 다섯 시 다 되어 혹시나 전화를 확인하면서 당근에 들어가 보았다.

 바쁜가요? 물음과 함께 지금 진주에 나오는 중이라며 곧 도착할 것이란다. 부랴부랴 준비하여 약속 장소로 가서 기다렸다. 곧이어 검은색 차가 선다. 내리는 분이 후덕하게 생긴 모자를 쓴 스님이다. 절 살림살이를 맡아하는 분인가. 이렇게 가까이 스님을 마주한 것이 처음이다. 호주매화 백결을 보고 예쁘다며 한련화를 절구에 심으려 찾고 있었단다. 마침 오늘 아침에 당근에 올라와서 바로 약속을 잡았다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 다른 때는 내가 더 주면 주었기에 그것마저 어색하여 고맙다며 얼른 자리를 떴다.

 얼떨떨한 감정이 들었다. 팔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아침에 갑자기 결정하게 된 것이 혹 스님이 한련화를 구하고 있어서 그랬나. 내가 거기에 맞추어 움직여진 것은 아닌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상한 날이다. 내가 키운 꽃이 절 한쪽에 심어지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 여러 사람이 보고 좋아하면 되지 뭐가 그리 복잡하고 미묘한지. 다 사람 좋자고 하는 일인데.

 한련화가 꽃을 피우면 절구통과  어울릴 것이다. 항아리 같은 다정한 느낌이 나는 것은 왜일까. 옛 물건에 대한 향수일지도. 한련화는 넝쿨성이기에 흘러내리면서 꽃을 피우겠지. 절구에 구멍은 없을 것인데 물 빠짐은 어떻게 하려나. 별걱정을 다한다. 한 해 두 해 꽃을 키워본 분이 아닐 것이니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꽃이 누구에게 가더라도 고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많은 것을 어쩔 수 없이 돈으로 가치를 매기지만 그 생명이 가지고 있는 귀중함은 돈과 무관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키운 것들이 다른 이의 마음에 환하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나 혼자 보는 꽃이 많아졌다. 꽃도 시간과 비례하는 양 늘어난다. 해가 가고 묵어서 꽃도 푸짐하게 보여준다. 마음이 답답할 때는 휘이 마당에서 이 꽃 저 꽃을 바라보면 진정이 된다. 그러려고 꽃을 키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욕심을 부리는 것도 같다. 감당을 못하면서도 사고 싶은 마음을 참지를 못한다. 꽃 중독이다.

 이번 거래를 하면서 꽃들을 더 잘 키워서 많은 사람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의 꽃 과꽃도, 여뀌를 닮은 갯모밀도 아침 빗속에서 옮겨 심었다. 가을을 빛내줄 야생화들이다. 나도 보고 남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도 나눔에 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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