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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Apr 15. 2023

할미꽃 봄 편지

 어둠 속에서 차 불빛에 진달래 꽃빛은 더 선명하다. 진달래꽃을 꺾어가자고 남편을 졸랐다. 나무가 크고 도랑이 있어 내가 꺾기엔 무리다. 남편이 건너뛰어 꺾어준 꽃무더기를 안고서 내가 꺾은 것처럼 좋아하며 집으로 갔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도 진달래를 꺾어가서 병에 담아놓으면 좋아하시던 어머니를 추억하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가신지 일 년이 다 되어 형제들이 고향집에 모이기로 한 날이다. 윗 지방보다 가까이 사는 우리가 서둘러 갔다. 눅은 공기도 내보내고 구들도 따시게 하고. 허리가 안 좋은 내 대신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고 닦는다. 물론 일주일 전 선발대처럼 가서 마당도 감 잡고 주인이 없는 뒷밭에 넘쳐나는 쓰레기를 치우고 검불을 정리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진달래꽃을 한 아름 안고 남편고향집에 들어서며 입이 저절로 벙긋거린다. 여기저기 찬장 문을 열어 들여다보아 빈 꿀 병을 한 개 찾아내어 꽃을 꽂았다. 거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람보다 먼저 꽃이 보이게 놓는다. 반기는 것에 꽃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밤 열두 시께나 도착한 시누이들과 동서 네가 우리보다 어째 진달래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한밤중인데도 꽃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눈을 맞춘다. 이른 봄 피어나는 진달래꽃을 입 주위가 검붉어지도록 따먹었던 추억의 꽃이어서 더 반가워하는지 모른다. 어서 오라는 인사를 내대신 진달래꽃이 톡톡히 잘해 주었음은 두말할 것이 없다.


 아침에 마당 귀퉁이에 잎이 넙데데한 머위를 뜯고, 초벌도 베어내지 않은 부추를 잘라내었다. 이때껏 한 번도 보이지 않던 할미꽃이 서너 군데나 피어있다. 막내 시누이가 “엄마가 할미꽃으로 왔나 봐” 얼마나 엄마가 그리우면 할미꽃만 보고도 엄마를 생각해 낼까. 나랑은 너무나 다르다. 지난주 왔을 때 할미꽃을 보고 어머니가 안 계신다고 들꽃들이 집안을 넘본다고 생각을 했더랬다. 창고 앞 시멘트 금이 진 곳에 보랏빛 제비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고, 담장 밑 어머니 계실 때 심었던 키 작은 수선화가 주인 없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환하고. 비닐하우스 주변에 다소곳하게 고개 숙인 자주 빛 할미꽃들이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며느리와 딸의 정서가 이리 다른가 싶어 뜨끔했다. 옛날이야기들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구나 싶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속담도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닌가 보다. 자외선이나 적외선 같은 말을 모를 때도 그랬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땅에 붙은 꽃에서라도 엄마의 자취와 그림자라도 느끼고 싶은 딸과, 풀 한 포기 운신을 못하게 하던 어머니의 바지런한 모습만을 그리는 며느리의 상상력은 한계가 분명하다. 봄마다 찾은 남편 고향집에서 할미꽃을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나도 의아하긴 했었다. 작은 시누이의 말이 맞을까. 잠깐 흔들린다. “에이 권사님씩이나 되면서 무슨 소리냐”라고 퉁거지를 하자 웃고 지나간다. 어머니에 대하여 늘 간절하던 막내딸이었으니 그렇게라도 엄마의 흔적을 찾고 싶은 것이겠구나 싶었다.


 산소를 둘러보고 묵혀두어 쑥대밭이 된 밭에서 쑥을 뜯는다. 내가 큰 시누이에게 쑥버무리가 먹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큰 시누는 티가 있게 뜯어온 쑥을 보면 깨끗이 다듬는다. 자기는 어릴 때 엄마에게서 쑥 뜯는 것을 배웠는데 티끄락 한 개라도 들어가면 혼 줄이 났다고. 어머니 젊어 지방도시에서 구멍가게를 할 때 쑥을 뜯어 팔았다면서. 막내 시누이와 큰 시누이도 어머니에 대한 감회가 참 다르다.


 머위를 살짝 데쳐 쌈을 싸고, 참기름 잔뜩 넣은 부추 무침과 쑥전과 쑥버무리, 숯불에 구운 고기를 마당에서 오붓하게 먹었다. 막내 아가씨가 진달래와 조팝꽃으로 장식을 한 식탁은 뭔가 분위기가 맞는 듯 안 어울린 듯했지만 좋았다.


 어머니를 기념하며 일 년에 두 번씩 모이자는 약속을 했다. 사랑하며 사는 것은 남아있는 자식들의 몫이다. 어떻게 도리하고 살아갈 것이냐의 숙제를 던져놓고 어머니는 먼저 가셨다. 살아감에 있어 남이 아닌 이상 서운함이 맴돌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형제이니 조금씩 곁을 내어주며 부모님이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며 살 일이다. 감정의 골들이 페이기도 하겠지만 서로 너르게 보듬어 안을 수 있으면 좋을 데.

 어머니가 찾아온 것처럼 첫정으로 몇 송이 고개 숙인 할미꽃도 두둑하게 수많이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할미꽃 봄 편지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어머니가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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