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의 주인공 이름 같다. 고상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여성을 빗댄 것 같다. 어디선가 익숙한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때문이었던 듯하다.
지난 초여름이 코앞일 때 동서가 거금 팔만 원을 들여 러시아에서 왔다는 제라늄 꽃모종을 보내왔다. 고 작은 것이 꽃망울을 달고 있었다. 갓 피어나기 시작한 꽃송이를 훅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했다. 여름이라 분갈이를 하면 어렵겠거니 겁이 나서 건들지도 못했다. 몸값이 거하니 만지기가 두려워진 것인지도. 그대로 두었는데도 시간이 흐르자 뭔가가 주사기로 생기를 빼내는 느낌이었다. 시나브로 생명이 꺼져갔다. 뿌리를 파보니 대궁이 시커멓게 병이 들었다. 동서에게 꺾꽂이를 하여 자넷을 주기로 했는데 물 건너갔다.
안나 자넷을 키워내지 못한 마음의 병이 들었다. 꽃을 키우는 내 자존심에 생채기를 낸 것. 언젠가는 저것을 키워내고 말겠다는 오기가 저 밑바닥에 깔렸다. 개체수를 늘려 동서에게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보다, 꽃을 다루는 사람이 눈앞에서 꽃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컸다. 아마 그 녀석이 살아 있다면 지금쯤 쏠쏠하게 빛을 발하고 있을 것인데.
실패했을 때 모양만 다르지 다시 시작하여 끝장을 보고 말겠다는 것이 사람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속성이 아닐까. 도박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될 듯 될 듯 되지 않기에 기어코 바닥을 보아서라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인간 본성을 공략하는. 무너지면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도전장을 내밀고야 마는 우리네들이다. 화살표의 끝이 다를 뿐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끝내 고집을 부려서라도 이루고야 말리라는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안나자넷이 작년보다는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지금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케이제라늄은 또 얼마나 다양하게 얼굴을 들이미는지. 아예 쳐다보기를 거부한다. 겨울에 실내에 들이다 보니 웃자라 미워지고, 식물 등을 켜니 마니 힘이 들었다. 고생한 것에 비하여 꽃이 피어나는 것이 영 시원치 않아 더 그러는지도. 다시 도전장을 내밀어야 할 때다. 지금 한창 우리 집 아이들이 물이 오르고 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거금으로 사기는 억울하다. 안나 자넷이 당근에 저렴하게 올라온다. 이 지역이 아닌 산청까지 와서 가져가란다. 택배로 보내줄 수 있냐고 묻자 안 되겠다고. 귀찮은 일을 할 마음이 없다. 가만있어도 잘 사 가는데 굳이 포장까지 하고 우체국에 가서 보내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꽃을 판매하는 목적이 경제적 가치만이 아닌 누군가 꽃을 예쁘게 키우고 싶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상도에 어긋난다. 몇 백 원짜리도 택배가 가능한데 몇 만 원이 넘어가는 것을.
내가 품고 있는 제라늄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한 인물이 빠져 마음 한쪽이 비어있다. 도도한 듯 기품이 있는 녀석 안나 자넷. 장미인 듯 아닌 듯 알 수 없는 아리송함을 간직한 꽃을 잘 키우고 싶다. 드디어 사기로 했다. 오월 초이니 삽목둥이도 잘 살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이다. 꽃지면 상토에서 빼내어 내가 사용하는 흙으로 용감하게 바꾸어 주리라.
이즈음 너무 여러 가지 색으로 덧칠을 한 꽃들이 선을 뵌다. 삼색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도 꽤 된다. 한 나무에 세 가지 색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피어난 색깔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가고 새로 핀 꽃과 구별되어 여러 가지 색이 한 꽃 안에 어우러지는 것 같다. 혼합된 색들이 싫어진다. 순수하지 못하고 너무 혼탁해지는 세상과 닮은 것 같아서. 어쩌면 내가 그런 것들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와지는 여림의 뒷모습일 수 있다. 단순해지는 시간대에 살기 때문인지도. 꽃들이 비밀에 비밀을 더하듯 겹겹이 싸이 기를 좋아한다. 모두 다 쌍 커플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이 자꾸만 베일 두르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것이 최고라고 마음을 부추긴다. 자꾸만 새것만을 찾는 우리의 습성에 기대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진다. 옛것보다는 뭔가 새롭고 산뜻한 것에만 눈길이 머무는. 키가 시원시원한 꽃들을 앉은뱅이로 만들어 답답해 보이게 하는 것도 아쉽다. 집안에서 키우려니 자꾸만 앙증맞은 것들로 변형시켜 간다. 하물며 병에든 것 같은 변이 종을 번식하여 상품으로 내어놓은 것들도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질서들이 무너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되고 상품가치와 경제력이 있는 것이라면 지켜야 할 선이 없는 시대가 되어간다.
어린이날 아침에 안나 자넷을 가지러 갔다. 파는 이가 잘 사간다며 집에 가서 물을 주라고 한다. 잘 샀는지 아닌지는 내가 키워보아야 알 것인데 미리 점을 쳐준다. 생각보다 수형이 잘 잡혀 있다. 몸통이 통통하다. 얼마나 많은 자구들을 내어놓았는지 알 만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모체를 바꾸는 시기인 것이다. 단물을 빼어 먹고 마지막으로 다른 집에 보내는 것은 아닌지. 나는 또 그것을 좋아라 사 오고. 다 똑같다. 잎도 꽃도 힘이 없다. 집에 와서 물을 주고 여러 날을 기다려 가지하나 끊어내어 꽂이를 했다. 꽂이를 성공해야 할 것인데 궁금하다. 어제 삽목 했으니 한 달 뒤 뽑아보면 뿌리가 잘 내려있기를. 살아있는 것들은 처음부터 잎으로 말한다. 생생하게 힘이 있으면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나의 목표는 안나자넷을 나무처럼 크게 키워 알알한 꽃들이 주렁주렁 멋스럽게 달리는 것이다. 장미 형 제라늄 안나 자넷!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