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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May 20. 2023

달빛정원

 달무리

  달과 별을 맞이하는 정원을 만든다. 사람들의 마음에 달과 별을 심어 흐르게 해야 한다. 힘들어 지친 마음을 달빛정원에 와서 쉼을 가지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지도. 달빛과 별빛을 어떻게 맞이하면 마음이 뿌듯하고 살랑살랑 바람이 일며 웃음이 번지려나. 한낮의 정원을 거니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달밤으로 별빛 흐르는 은하수 아래로 데려가야 한다.

 

 달빛이 드리운 밤은 은은하게 신비감이 더해진다. 거기 머무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언가 의미로 가득해진다. 나무 우듬지에 얹힌 짙푸름은 살짝 무섬증을 가져오는 별빛과 달빛이 흐르는 밤에 거닐어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 밤에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으로 가득 찼었다. 나의 미래도 사랑도 다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금싸라기 같은 달빛이 교교한 밤에는 마음이 말랑말랑 해져서인지도 모른다.


  오월 초였을까. 라일락이 피어 있었다. 그때는 날씨가 선뜻 덥혀지지 않았기에 꽃이 피어있었는지도. 그 밤 달빛이 내리고 있었다. 꽃향기가 짙은 것을 보니 나무의 나이테가 여러 겹이었을 것 같다. 결혼하기 전 남편과 거기를 왜 갔는지는 잊어버렸다. 일기장을 찾아보면 그날 왜 거기 있었는지가 나올까. 지금은 없어진 명보극장에서 ‘늑대와 춤을’ 보고 가까이 있는 교회로 간 것 같다. 뜨문뜨문 사람들이 보였다. 향기로운 밤공기에 달빛이 흩뿌려지고 분위기가 은은했었다. 그곳에서 살짝 입이라도 맞추는 건데 교회 뜰이었으니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었다. 달빛에 섞인 꽃향기와 그대, 그 순간이 한 컷 사진으로 내 추억의 앨범에 담겨있다.


 요새는 달빛아래라는 말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것 같다. 점점 더 그런 것들에게서 멀어져 간다. 가로등과 환한 전등불빛에 봄밤 향내 같은 달빛의 은은함은 가로등 빛에 가려 달빛이 있는지도 모른다. 달빛이 달빛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엊그제 잠깐 몇 명이서 산책을 하던 중 밤에 별 보러 와야겠다는 언니가 있었다. 별이 보고 싶어 별을 만날 곳을 찾고 있었다고. 산속이라서 별이 가까울까. 별을 그리워하고 별을 마음에 담고 눈 맞추고픈 고움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고개만 쳐들면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별빛도 이제 찾아 나서야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뭐가 달라진 것일까. 달빛과 별빛이란 말이 참 멀게 느껴진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대 손잡고 달빛 내리는 강변이라도 거닐며 달빛과 별빛에 어우러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러면 내 삶에도 어여쁜 빛의 띠인 달무리가 얹히지 않을까.

    

 밤에 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이 없을 것인데도 달과 별을 테마로 구성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정원 설계를 가르치는 교수님께 드렸다. 정원을 꼭 밤에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란다. 정원에 달과 관련된 의미를 식물과 조형물로 연출하여 자연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한다. 혹 달집을 태우던 것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리라. 달을 향하여 손을 비비며 뭔가를 염원하는 그런 의식으로 흐르는 것도 아니라고 짐작해 본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큰 틀에서 주제가 필요하고 거기에 따르는 소재와 이야기가 필요하니 그러는 것이리라.


 내게 조각조각 들어앉은 얕은 지식이 오만가지 생각으로 상황을 더 어렵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참여정원 부지에서 설계와 식재에 대하여 교수님과 의논한다는 공지가 투표에 붙여졌다. 맨 먼저 찬성했다. 정원 터를 보러 오라기에 두말 않고 달려갔다.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닌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보고 싶어 처음부터 거기에 있고 싶었다. 돌산이 어떻게 꽃밭으로 변하고 어떤 의미가 주어지는지 모든 과정을 부여잡고 싶어.


 돌산이다. 돌은 ‘시’에서 주워준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리 돌을 골라낸다 해도 돌산은 돌산이다. 흙으로 덧씌우기를 해야만 식물이 버틸 것 같다. 돌산에 달빛을 흐르게 해야 하고 별빛이 쏟아져 내리게 해야 한다. 달맞이꽃의 몫이 커질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밤에만 피던 꽃이 낮에도 피는 황금달맞이, 분홍달맞이, 흰 달맞이꽃이 나왔다. 달과 어떻게라도 이음새가 있는 꽃이나 나무가 쓰이겠지. 어떤 의미로 어떻게 입혀낼지 형상화되는 과정을 부족하나마 글로 담아보고 싶다. 달빛이 땅을 어루만지듯 정원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나는 그것을 붙안고 글로 고.


 기초반과 특강반의 예산이 몇 천만 원인데 비하여 맞은편 작가 반에는 몇 억이라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비교보다는 각자의 생각들이 어떻게 그려지고 거기에 맞추어 일이 벌여져 매듭지어져 갈지 사뭇 기대된다. 칠월은 한 여름이고 벌써 장마소식은 문 앞에 있다. 비 오는 달빛정원은 아니기를 바란다. 우산을 들고 거니는 정원도 운치가 있으려나.


  달빛과 별빛이 한낮에 쏟아져 내리는 숲 속의 진주 월아산 정원. 어떤 은유로 표현해 내야 할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 보는 수밖에. 이번 주 각자 설계를 생각해 오라고 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사람들 마음에 달빛과 별빛이 낮에도 은은하게 비추는 설레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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