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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May 27. 2023

달빛정원 2

설계도를 그려라


만월문을 지나면

세월이 깃든 소나무에

학 두 마리 그린 듯이

앉아있고

별가가미 꽃이

은하수와 같아라

익모초와 당귀로

고향의 그리움에 젖고

흰 배롱의 주름

꽃잎 위로 은은히

퍼지는 달빛이

돌확에 뜬다

     

  새로 올라온 도면으로 숙제를 한다. 실력이 모자라지만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며 달빛정원의 설계도를 그린다. 이십육일까지 올리라는 기한이 주어졌다. 그 전날 저녁에 마쳤지만 다음 날 아홉 시가 넘기를 기다려 올렸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올리지 않아 머쓱하다. 정원박람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른 시민정원사들과 공간이며 일이며 합치라고 하는 것을 보니 뭔가 차질이 생겼을까. 먼저 공부한 우리는 설계를 하고 나무와 꽃 심기를 같이 하기로 하였다.


  숙제를 내고 나서 새로운 부지를 보러 갔더니 다시 설계를 해야 할 것 같다. 부족한 면이 많다. 그냥 버티기로. 공간이 작아서 도면에 이미 설계해 넣은 초가를 허물어야 될 것 같다. 종류도 많고 양도 넘친다. 졸참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데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여 계수나무 아래 토끼들이 떡방아를 찧는 것을 표현했었다. 달나라까지 가는 시대인데도 옛이야기는 언제나 그립다. 우리는  추억을 먹고사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였다. 실제로 졸참나무가 생각보다 많이 크다. 계수나무가  참나무와 나란히 서면 싸울 것 같다. 계수나무와 토끼가 숨쉬기가 어려워 놓아주어야 한다.

 

참나무가 그늘을 넓게 드리울 것 같아 음지에 사는 꽃식물을 찾아야 한다. 처음부터 제대로 공간을 설정해 주었으면 좋을 것을. 현장을 가보지 않고 임원진에서 올린 것만을 참고하여 과제를 했더니, 나 여기 안 어울려요! 도면 속의 나무와 꽃이 하나 둘 눈을 뜨고 아우성이다. 설계도면 올린 것 때문에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진다. 맨 나중에 올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거기다 설명을 곁들인다고 시도 아닌 설명도 아닌 것 같은 글을 덧붙여 내 보냈다. 괜찮다고 생각했으니 자신 있게 올렸으리라.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오 분이 지나면 카카오 톡은 먹은 것을 절대로 토해놓은 법이 없으니. 설계도면 설명을 적은 이유는 미리 한 사람들이 자신이 한 설계도면을 보며 주제발표를 하는 것 같아 좋아 보였다. 나도 이해를 돕는다고 쓴 것이다.

 

  오는 화요일 대표들은 지도교수님의 설계로 만들어진 정원들보러 전북으로 간다. 나도 갈까 했는데 엄마를 보러 가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냥 마음을 내려놓는다. 열심히 하는 이들이 가기 때문에 뭔가 달라져 올 것이라 믿어본다.

 

  돌산은 그대로 돌만 무더기로 쌓여 있다. 아니 더 쌓여 있다. 일이 앞으로 나아간 것이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이면 될 것이라고 현장 책임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도 될 것인지. 두 시민정원사 팀이 활동하기로 했으니 땅만 잘 닦이면 일사천리로 밀어붙여지겠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일이 진행이 될 것 같아 안타깝다. 여유 있게 즐겁게 일을 하면 좋은데 처음 하는 일은 늘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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