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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n 10. 2023

달빛정원 3

풀꽃

 정원의 자리가 바뀌므로 기본개념도를 다시 그리라 하였다. 이전에 내가 그린 것은 어떤 분이 말하기를 오억 짜리라고 하였다. 그럴 수도 있다. 돈에 맞추지 않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였기 때문이다. 특별반 설계를 지도하신 교수님이 가르친 대로 한다고 하였는데 상상력이 부족했는지, 잘못짚은 것도 같아 부끄러웠다. 두 분의 교수님들 중 한 분이 의도한 것은 눈에 잘 띄는 패턴 정원이었다.


  처음으로 정원박람회를 하는 것이니 뭔가 확실하게 드러나야 할 필요가 있을 것도 같다. 정원문화가 나날이 발달해 가는 요즘은 어디를 가도 예쁜 꽃 천지다. 꽃만 가지고는 안 되어 주제와 리듬이 같이 어우러진 마음에 깊이 와닿는 것이 필요하다.


 주제가 달빛이 비치는 신선의 정원이라는데 전체 구도가 유럽정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다 나는 기본개념도를 구닥다리처럼 항아리위에 돌확을 얹고 수련을 띄우고 박을 올리는 옛이야기 같은 이미지를 연출했으니 주의를 끌지를 못하였다. 옛 정서를 담아보려고 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개념도를 새로 그리며 나 혼자서 맘에 들어하는 부분이 있었다. 돌산의 돌과 바위를 모아 쌓고 거기에 흙을 채워 풀꽃을 심기로 하였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눈에 띄는 것들을 가득 심고 싶었다. 풀들도 마음 놓고 살아가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야생화라 불리는 것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어여뻐서 풀꽃들이 출세한 것이다. 거기에 들지 못하는 풀들을 심어보고 싶었다. 풀꽃들은 어느 시간 피어 있다가 씨를 떨어뜨리고 사그라진다. 다음 해에 다시 나 꽃피기 때문에 계절별로 풀꽃들을 가꾸어보고 싶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앉은뱅이로 꽃부터 피우지 말고 자랄 만큼 자란 뒤에 꽃을 피우고 씨를 맺게 하고 싶었다. 관심을 가지고 관리만 잘하면 생각보다 멋진 야트막한 풀꽃 화단이 될 것 같았기에.


 풀이 작물이 되기도 하고 작물이 잡초가 되기도 한다는 말을 잡초 학 시간에 들었다. 그만큼 풀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또 작물이 되었다가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다시 풀의 신세로 돌아가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지난 사월에 딸들하고 제주도에 갔었다. 숙소에 화산 석 담장이 둘리우고 다육식물  용월이 자라고 있었다. 생육조건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자람 세가 좋았다. 노랗게 별꽃도 피었기에 주인에게 어떻게 심었느냐고 물었다. 흙을 돌 사이에 조금 넣고 심었다는 것이다. 화산석은 옴폭 패인 곳이 있으니.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풀들은 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들이니 잘 살아낼 것이라고. 작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만 눈 맞추게 하고 싶었다.


  풀꽃을 얼마나 알까. 손가락을 몇 개나 구부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풀꽃 이름까지 알아 무엇하겠느냐고 할지 모른다. 요새 나는 왜 그런 작은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지. 내가 풀꽃처럼 작아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렇다고 작은 꽃만 가꾸는 것은 아니다. 내 주먹보다 더 큰 꽃들도 피어난다. 아니 얼굴만 한 것도 있다. 큰 꽃은 그대로, 소소한 것들은 작은 대로 마음에 들였다. 내 안의 꽃밭에는 꽃들이 늘 피어있다.

 

  봄을 알리는 봄맞이, 꽃마리, 광대나물, 봄까치꽃, 황새냉이, 꽃다지, 지칭개 등 풀꽃들은 이름도 예쁘다. 여름에는 타래꽃, 꿀풀, 애기똥풀, 엉겅퀴, 솔나리든지, 가을에는 오이풀, 여뀌, 쑥부쟁이, 물봉선 등을 철마다 보여주어 풀꽃들도 꽃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풀꽃 정원은 처지가 되면 만들어보기로 맘 깊숙이 넣어 놓았다. 풀꽃은 정원과는 거리가 멀어  턱도 없는지 아무 동요를 일으키지 못하였다. 풀꽃화단은 기회가 되면 나 혼자라도 만들어보고 싶다. 여뀌만 해도 여러 종류여서 한 해는 그것들만 심어 다름과 가치를 구별하여 보고 싶다.

 

  나는 이상적이기만 하고 현실감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멈추면 괜찮은데 생각의 갈래가 끝도 없이 파도같이 퍼져나간다. 다시 하라는 숙제가 주어졌지만 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모일 때마다 참여는 하였다. 하나의 정원이 어떤 여정을 거쳐 자라나는지를 보고 싶었기에. 올라온 네 개의 기본 구상 중에서 손들어 정하였다.


 나무에 달이 열린다. 떡하니 있던 졸참나무를 가운데 세우고 주위에 꽃이 패턴으로 짜인다. 가장자리에는 은하수를 수놓고 야간개장까지 하면 숲 속의 진주 정원 완성이다. 우리는 산속 정원에서 달빛에 마음을 적시고 신선이 되는 것이다. 신선은 달빛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의미를 채워서 온 산이 꽃과 나무로 가득할 것이다. 내 마음도 달빛과 별빛, 꽃빛으로 가득 채워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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