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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n 24. 2023

나의 수국

   오직 나를 위하여  것들인 것 같다. 바라보면 눈도 부르고 맘도 부르다.  눈 맞추면 눈가에 잔주름 번진다. ‘앤드리스 썸머’라는 이름의 수국이 두 개여서 나누었을 뿐. 형형색색의 꽃에 빠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아름이 되어가는 꽃을 보고 누릴 때가 되었다.


  차가운 겨울을 비닐하우스에서 비비적거렸기에 노숙한 것들보다 한 달여 일찍 입술연지를 다. 그것들은 꽃을 가장한 것으로 진짜 꽃을 보호할 수단. 색깔로 나비와 벌을 불러들인다. 그렇게 보면 자연사나, 인간사나 비슷한 꾸러미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된다. 사람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시작점은 같다는.


  한참 인기를 누리는 ‘아나벨 수국’을 작년에 들였다. 영하 삼십 도까지는 월동이 되고, 구 가지에서도 신가지에서도 서글서글한 꽃 볼을 보여준다고. 일찍 꽃을 보고 잘라주면 한 번 더 피어주는 기특한 것. 우리 얘는 너무 어린것이었는지 꽃을 만들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가지 두엇 꺾꽂이를 했는데 살아주었다. 올봄에 어미가 꽃을 보여 줄 거라 생각하고 삽목둥이를 아는 분에게 건넸다. 이상하게 집에 남아있는 모체가 시난고난하더니 초록빛을 놓아버렸다. 그이가 자기도 이 사람 저 사람 나누다 보면 나중에는 내 것이 없을 다며 아나벨이 벌써 하얗게 피었다며 한 개를 준다. 


 무엇에든지 서두르지 말아야 하는가 보다. 완전하게 뿌리를 내렸을 때 나눔을 하던지 했어야 했나. 꽃을 대여하는 작은 도서관에 다녀온 수국이 작년에도 올해도 살아내지 못했다. 공기와 물과 빛이 부족하여서인지, 관심을 받지 못해서인지 그 이쁜 것들이 가버린다. 아직도 식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어거지로 끼워 맞추었다. 실내에서 몇 주 정도는 버텨주겠지 하는 실오라기에 기댔다. 관엽식물 가운데 분홍 꽃송이 하나 끼면 분위기가 달라져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참을 때를 알아야 하는데,  잘 견디다가도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맥을 놓아버린다.


 아나벨과 달리아, 설구화 등 몇 가지를 얻어왔다.  격리했다. 파리약을 너무 많이 뿌렸는지 거뭇거뭇 약해가 나타났다. 집에 있는 균류 방지재를 뿌린다. 진균류들에 효과가 있다고 했으나 경험으로 미루어 진딧물에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날마다 분무를 한다. 또 내성이 생길까 걱정이고.

 

 꽃집을 하는 분에게 물었더니 잎을 다 떼어 밀봉하여 버리라고 다. 자기는 사 온 물건에 온실가루이가 있으면 아예 통째로 비닐에 잘 싸서 버린다고 했다. 충해 중에서도 가루이가 제일 지독하다며. 그렇다고 꽃을 없앨 수는 없다. 살 처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얼마나 좋은 마음으로 기뻐하며 나누어 주었는데  저것들을 버린단 말인가. 오늘 아침에도 옥상에 올라갔더니 빨갛게 노랗게 달리아가  내 마음을 흔든다. ‘나를 버리지 마세요’하는 듯.


 작년에 천사의 나팔에 가루이가 조금 생기는 것 같았는데 다른 것에 번지지는 않았던 것을 기억해 냈다. 내 나름대로 꽃나무를 내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는 중이다. 이파리 하나하나 들추어 알 같은 것은 손으로 비빈다. 바람이 잘 통하게 하고 누렇게 뜬 잎을 주고 물 잘 챙겨준다. 일주일 뒤에 격리를 해제해도 괜찮을 것 같다. 믿는다.


 ‘골리앗’이라는 수국을 새로이 들였다. 얼굴이 골리앗처럼 커진다는데 아직 어려서인지 얼큰이인 줄은 잘 모르겠다. 연한빛깔 때문에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라일락인지 물어본다. 색이 강렬한 장미수국이나 원예 종 수국을 본 때문인지 그 엷은 꽃빛에 내 마음 맑아지는 것 같다.

  

 어느 날 수국에 뜨악한 남편이 꽃이 안 예쁘다고 했다. 예뻐도 내가 키웠고 미워도 내가 키웠는데 내칠 수 있느냐고 하자  말이 없다. 자랑할 것도 없는 나의 일상을 내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내 손을 탄 것들을 귀하게 여겨야 다. 수국은 개화기간이 길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까. 꽃색이 화려해서 그런가. 꽃 앞에 서성이며 시도 때도 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 보석 같은 조그만  봉오리가 터져 별빛을 연상케 하는데.

 

 수국꽃을 반은 잘라냈다. 공간이 확보가 되자 꽃송이들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저들도 치열하게 영역다툼을 한다. 반 달여 지나면 화려한 수국은 지고 크림색 라임라이트 목수국들이 피어나겠지. 나의 마음도 봉긋한 아이스크림 꽃처럼 부드러워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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