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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l 08. 2023

달빛정원 4

땅따먹기

   같이 공부한 시민정원사 분의 설계도면이 뽑혔다. 다분히 교수님의 생각이 반영이 안 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얼마나 뿌듯한지. 이런 기회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론과 실기가 맞물려 정원이 되어간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내가 한 설계가 아니면 어떤가.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앞으로 올 수많은 그날 중의 하나겠지만 처음으로 설계도면이 땅 위에 그려지던 날. 얼마나 설레었는지. 꽃이나 나무는 심어보고 안 어울리면 다시 심기를 할 수 있지만 땅 위에 새겨진 그림은 다시 그리기 어려우리라.


 기다란 줄자와 노끈, 곧은 장대 같은 네모진 나무에 눈금이 있다. 접었다 늘렸다 할 수 있는 측량할 때의 자가 쓰였다. 아마 자를 가져올만한 전문가분이 시민정원사에 끼여 있는 것 같다. 졸참나무 주위에 작은 원을 그리고 그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더 큰 원이 그려진다. 다섯 개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거기서 초승달모양을 건져 올렸다. 락카로 표시를 하고. 젖은 땅에는 도면을 그릴 수 없다고 비가 오기 전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서둘렀다.

 

 예산이 다고 농가에 직접 나무를 뽑으러 간 팀이 고생을 했다. 끝없이 심긴 나무들을 붙잡고 뽑아낸 다음 야자 그물 같은 것으로 뿌리를 잘 감싸 포대에 담는다. 햇볕은 쨍하고 그늘은 없고 마른땅에서 나무는 뽑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나무가 차로 그득그득 실려 왔다. 사진 올라온 것을 보니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애썼는지 눈에 선하다.


 우리는 참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하늘에도 구름이 둘렀다. 바람따지라 시원한 곳에서 일했는데 갑자기 미안해진다. 땅에 초승달 그리는 일을 같이 하는 것을 양보할 수 없었다. 일을 저녁 늦게까지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무 뽑는 분들과 퉁이 처지려나. 나중에는 어두워서 자동차 불을 켜고 나무를 심었다.


 다음 봉사시간이 되었다. 비가 와서 그러는지, 잘못 심어서인지 나무가 둥둥 떠올라서 다시 손봤다. 나무 뽑으러 갔던 한 분이 이것이 나무 심는다고 심어놓은 것이냐고 투덜댄다. 비가 와서 뜬 것 같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나는 허리가 안 좋아 서서 하는 일을 하고, 나무 심는 분들은 가시에 찔려가며 쭈그려 앉아 도형 안을 메꾸고, 저녁 아홉 시 넘어 까지 일했다. 주말이고 저녁까지 일했기에 봉사시간 일점 오 시간 쳐준다 해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서른 시간의 봉사시간과 상관없이 날마다 정원일에 참여한다.


 초승달 둘레를 회양목으로 두른다. 그 안에 색깔별 나무를 심는다. 매자나무가 색이 곱다. 가시가 있다. 지가 장미인 줄 착각하나. 장갑 낀 손으로 나무를 심어도 가시가 몇 개씩 손을 찔러서 빼냈다고. 패턴을 만들어야 하니 촘촘하게 심었다. 좁은 공간에 가시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쁜 것들은 왜 가시가 있는 거지. 매자 너도 조금 있으면 가시를 없애 줄수도 있어. 너무 드세면 기가 꺾이는 날이 온단다. 부드러운 매자로 다시 나야 할지도 몰라.


 다음날 비 온다는 예보가 60%이다. 경험상 어중간한 수치다. 까딱하면 비 오지 않을 수도 있기에 물 당번을 자처하고 나섰다. 물은 꽃과 나무뿌리까지 충분히 주어야 한다. 쉬이 볼 것이 아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면서 할 일이 못된다. 한번 주었는가 싶어도 다시 주기를 여러 번 나무가 충분히 물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아침에 눈뜨면 하는 일이라 자신이 있었다.


 마무리는 당당 멀었다. 법면이 비탈이라 물이 차이지 않게 비설거지를 한다. 심지 않은 나무들은 혹시 햇빛에 잘못될까 봐 차양을 쳐준다. 그것들에게도 일일이 물을 뿌린다. 나무가 잘 살아야 시민정원사들이 만든 정원이 빛이 나겠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땅따먹기를 했었다. 날렵한 조그마한 돌 한 개 고르고 원하는 만큼의 면적을 넓게 잡아 선을 그었다. 놀이 친구와 마주 보고 그 선에 빗대어 자기 손만큼의 반원을 그리면 땅따먹기 출발. 가운데 손가락으로 작은 돌을 멀리 보낸다. 멈춘 곳까지 선을 긋고 다시 집으로 돌을 집어넣어 금을 그리면 그만큼의 땅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이었다. 멀어져 간만큼 금을 그을 수 있었지만 욕심을 부리면 반원의 집으로 들어오기가 어려워 결국은 집을 늘릴 수 없다. 그러니 다시 집으로 돌아 올만큼 돌을 쳐내야 했다. 마지막에 넓은 집을 가지는 아이가 이긴다. 나는 놀이를 잘 못하는 아이였는지 이겨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 놀이에 어른들의 맘이 그대로 배어있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절제를 배우는.


 다섯 개의 달을 나무들이 꼭꼭 채웠다. 초승달이 땅 위에 그려질 때에 꼭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땅에 그림이 그려지는 모양이 그 옛날 어릴 적 쭈그려 앉아 친구와 자갈돌을 튕겨 줄을 긋던 기억과 맞물렸다. 나무들이 초승달 안을 오밀조밀 들어와 앉았다. 크레파스로 색을 칠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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