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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l 15. 2023

달빛정원 5

짚라인 포토존

 가장자리를 구분할 엣지를 묻는 작업이 쉽지 않다. 땅에서 빠져나올까 봐 못까지 깊이 박아 넣었다. 그 선을 따라 나무와 꽃을 심는다. 다들 열심히 움직였다. 언제 맞추어 봤다고 손이 잘 맞았다.

 

 작년 기초반 실기로 짚라인 포토존을 꾸미는 것이었다. 추워지는 때라서 따뜻할 때로 미루어졌었다. 조별로 설계도를 발표하기도 하고, 남아있는 봉사시간을 포토존 만드는 것으로 하자고 남겨두었다. 정원박람회가 계획되어 봄에 할 줄 알았던 일이 여름으로 미루어졌다.


 특별반 마지막 강의는 전주에서 오시는 교수님의 즉흥 강의로 이루어졌다. 눈앞에 소나무 두 그루가 어긋 맡겨 섰는데 소나무 잎 수가 다르다. 한 종은 우리나라 것으로 두 잎이고 다른 것은 외국에서 들어온 니기다로 잎 수가 세 개다. 소나무로 시작해서 정원의 역사를 아우르고 유럽정원까지 건너갔다가 돌아왔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정원은 거의가 짜깁기라고. 강의가 열리는 동안 포클레인이 땅을 다지고. 제법 큰 해당화 두 그루 심겼다. 그 무거운 나무를 기계는 번쩍 들어 올리고 잘 파진 땅에 안착시켰다. 밋밋한 곳에 나무가 심기니 절반의 일을 한 것 같기만 했다.


 엣지를 묻는 일이나 나무를 심는 일은 쭈그려 앉아야만 하는 일이라 몸을 사리게 된다. 서서 하는 일은 더 힘을 내어했다. 안 좋은 허리 탈 나면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거니와 고통스러운 것도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날마다 오지 말던지, 그것도 어렵다. 궁금하고 함께하는 것이 즐거우니 우비를 입고라도 같이 하러 오는 것이다. 나중 누군가 날마다 출근하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강의하신 교수님의 그 자리 머릿속 설계로 그려진 무지개 같은 아치를 땅 위에 그리게 되었다. 물론 우리들의 생각도 물으셔서 결정하게 되었지만. 개미들처럼, 내 일처럼 매달려 일하는 시민정원사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도 이어진 포토 존 만들기. 짚 라인 타는 곳에서 바라보는 장소로 사진에 잘 나오게 하겠다는 뜻인지.


 다음 날은 담당 교수님이 직접 또 배치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오는 교수님은 시간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나 보다. 오후에 일하러 갔으니 오전 팀들은 이미 다른 한쪽 엣지를 묻고서 나무를 심느라 고생을 하고 있었다. 교수님이 이 나무 심으라 하면 심고 안 어울린다고 뽑으라 하면 뽑느라 여간 마음고생이 아니었나 보다. 다른 교수님이 하던 것을 넘겨받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비는 내리고 펄럭거리는 우비를 걸치고 하는 일이라 버겁기만 하다. 노루오줌은 이곳에서도 찬밥이었다. 심겼다가 뽑히고 더 심으라고도 하였다. 서울에서 온 것인데 판매자는 상태가 좋다고 했다고. 어쩌면 냉장이 되지 않는 탑차에 실려 오느라 이상해졌을 수도. 실제로 받고 보니 꽃은 다 져 있고 볼만하지 않았다.  심어놓고 보니 내 보기에 진 꽃이라도 갈색 빛으로 하늘거리는 것이 좋았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아니었던 듯, 아스틸베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린다. 저버린 계절의 꽃을 어디에 맞추어야만 어울릴지를 고민한다. 칠월은 초화를 가까이하게에 썩 좋은 시기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교수님이 하라는 대로 바쁘게 움직였다. 허리는 허리고 일은 일이었다. 급하면 눈에 뵈는 것이 없는지도. 낼모레면 박람회가 열리므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 마지막 날인 데다 비까지 내리니.


 교수님들의  지도와 시민정원사님들의 열심이 어우러져 포토존이 완성되었다.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아는 시간이었다. 교수님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나무가 몇 그루씩 남자 기념수로 한 개씩 가져가도 된다고. 비는 내리고 짐을 챙기면서 나무도 가지고 오느라 장화를 신은 그대로 차를 얻어 탔다. 다음 날 생각하니 운동화와 호미를 넣은 봉투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실물 센터에 알아보니 운동화는 들어온 것이 없다고. 누군가 가져갔으면 잘 신겠지 했지만 찬찬하지 못한 나를 탓한다. 아주 비싼 꽃을 가져온 격이 되었다. 스케쳐스 운동화를 얼마 신지 않은 상태이기에.


 계단에 둔 아스틸베가 분홍으로 한들한들 거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참여정원을 만든 기념수이기에 애착이 더 간다. 다년 생이니 해마다 하늘거리는 꽃을 볼 수 있다는 먼 미래의 꽃까지 피워내어 입 꼬리를 올린다. 잎도 예쁘고 꽃도 다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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