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존이 완성되었다. 비는 내리고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갔다. 몇 이서 완성된 정원을 보러 가자고 마음을 모았다. 차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슬쩍슬쩍 차창으로 내다본 것이 다였다. 정원을 완성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특별반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2기 시민정원사 교육을 받는 분들도 실기를 분담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보고 싶은 것은 욕심이었던 것. 드러난 것에 비하여 말할 수 없이 일이 많았다.
1기 시민정원사인 우리가 어느 정도 틀을 닦은 뒤, 기초반에서 맡았기 때문에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 싶었다. 달을 상징하는 등을 다는 모습이라든지 비가 내려 물꼬를 트는 장면들은 바로바로 사진으로 단체 카카오 톡 방에 올라오는데 기초반이 하는 일은 알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설계도면 대로 시공되지 못했다. 그럴지라도 전체로 잘 어울린다. 잔디가 깔리고 꽃밭 속에서는 귀여운 조형물들이 속삭인다. 초승달을 표현한 패턴 앞에 손을 모으고 있는 요정 둘이 참신하게 다소곳하다. 참여정원이 궁금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었는지 교수님도 와 있었다. 요정이 신비감을 더한다고 이야기하자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진다고 치워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미켈란젤로가 사 미터 정도 되는 다비드 상을 조각할 때 시장이 와서 코가 너무 높은 것 같다고 했다는. 아무 말 없이 미켈란젤로가 돌가루를 손에 쥐고 올라가 코를 깎아내는 흉내를 냈다. 살살 돌가루를 흩뿌리며 이제 좀 어쩌느냐고 물었다고. 시장이 이제 좀 나은 것 같다며 돌아갔다는. 예술로의 작품은 순전히 작가의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원에 세워져 분위기를 보탰던 요정은 다시 정원을 둘러보러 갔을 때는 이미 요정나라로 돌아가고 없었다.
기도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어떤 형식을 취하는 것은 집중력이 떨어지기에 취해진 모습일 수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너무 초보적이 발상이 아닐는지. 교수님은 토 달지 않고 요정을 치운 것 같다. 나만, 정원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보는 것인가.
졸참나무에 매달린 등들이 아기자기하다. 켜지면 어떤 느낌일까. 태양열로 켜지기에 언제 꺼질지 모른다고. 비가 오락가락해서 달님은 구름 속에 꼭꼭 숨었다. 개인적으로 아름의 등 서너 개만 달처럼 참나무에 달았으면 했는데 조롱조롱 조롱박처럼 많이도 달렸다. 몇 개나 될까. 저렇게 환히 켜진 조명 때문에 진짜 달빛이 나더라도 빛을 발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방정맞은 생각도 스쳤다.
요정이 있는 풍경
잔디가 깔리고 침엽수들 아래에 꽃모양이 수놓아졌다. 땅에도 무늬를 들이는 정원. 곧 침엽수가 수술이 되는 것이라고 기초반 분께서 설명을 덧붙인다. 누군가 내 것을 자기들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처럼 생소했다. 우리의 정원이라고 맘먹고 있었는지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주인이 바뀐 것 같은. 우리도 애썼다고 하자 나무 밑 저 가운데 조성한 거 말이죠? 하는데 별거 안 했지 않느냐는 말이 들어있는 것 같기만 하다. 이 분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외침이 내 안에서 울린다. 설계부터 나무 뽑아 운반하고, 손 찔러가며 매자나무를 심었다. 어떤 남자정원사님이 내가 삽질을 하자 시간당 오천 원짜리라고 비키라고 했다. 자기는 만 오천 원짜리라며 삽질의 묘미를 보여주었는데. 필요하면 마다하지 않고 부닥치는 대로 일했는데 너무 과소평가받은 것 같아 쓴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했던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나 보다. 박람회 문 여는 날 기초반정원사들이 아침까지도 토사가 쓸려와 꽃모양 문양을 다시 만드느라 고생을 했다기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 정원은 같이 만들어가는 거야. 시민정원사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만들어낸 정원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더하고 덜함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대로 할 일을 했고 그들은 그들대로 마무리를 잘 해내었다. 서로가 나누어서 하나의 정원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정원박람에 첫날 졸참나무에 매달린 조명들이 어떻게 비추일지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어둠이 내려야 빛을 발하는 등이다. 주변에 밝혀진 불빛이 없어 별빛같이 어둑웠다. 다음 날 법면 위에 조명이 환했다. 정원은 완벽하지 않고 조금씩 만들어져 간다. 어스름한 빛 가운데 정원이 자태를 드러낸다. 졸참나무와 꽃들이 낮과는 다른 분위기로 살아난다.
이제 정원을 잘 가꾸어가야 하는 일만 남았다.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정원 돌보기를 잘해야 하는 운명체가 되었다. 시민정원사를 해보겠다고 면접을 보는 순간부터 우리의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