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 Aug 05. 2023

달빛정원 7

느끼는 정원

 정자에 앉아 앞산과 마주한다. 샘 같은 곳에 연꽃이 수줍게 피어나 있다. 이어저 있는 대숲에서는 사라락 댓잎 스치는 소리가 비밀스럽다. 제1정원은 월아산 가운데로 사람들을 이끄는 맞이 정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맑은 숲 아래 선비의 마음을 닮은 달빛이 머무는 곳에 사람도 머물다 가는 쉼이 있는 곳이라는 듯하다. 이야기를 가져와 공간을 만들고 바깥 경치를 불러서 더 가득함이 맞물리는 정원으로 나아간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쑥부쟁이, 구절초, 꼬리풀, 삼지구엽초 등 야생화들이 수놓아졌다. 계절을 따라 순서대로 피어날 들꽃들의 모습이 새삼 기다려진다. 나무들도 흰색의 꽃들이 피어나 순수함이 묻어난다.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다. 이제 심긴 것들이라 시간이 가면서 세를 불리고 힘을 얻은 뒤에 더 이쁘게 피어날  것이기에 벌써 내년이 기대된다.

 

  징검돌들을 놀이하듯이 밟고 내려가면 제2정원과 맞물린다. 서로 어우러져야 했기에 미련이 남는 부분이 왜 없을까. 작가정원이라는 울타리가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주하는 산의 자태가 비 온 뒤에 구름으로 덮여 얼마나 신비감을 더하는지. 기다란 나무둥치를 깎아 놓아 다리 쉼을 할 수 있고, 산의 높낮이를 그대로 이용하여 층의 시간을 가져왔다. 산불이 일어났던 산의 시간을 담아내고 대지의 높이와 나무의 높이에 따라 시선의 층도 나누인다. 층과 층을 이룬 시간들이 하나로 이어져 감각의 층으로 구분된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층으로 나누이고 깎여서 내가 되는 것은 아닌지. 과거가 없이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이 내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아쉬운 마음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시간이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나에게 한정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지금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뿐이다. 그럴지라도 흔들리지 않아야 함이 아무도 그 시간 그곳에 있지 않았기에 단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섣불리 판단하거나 자로 재지 않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리라.


 야생화들이 눈에 익다. 낮 설지 않아 편안하다. 산속에 피어난 들꽃들에 마음을 뺏기다 전체를 놓칠까 살짝 겁이 났다. 부분과 전부를 동시에 보아내는 눈을 가지고 싶은 것이 해거름참에 들어선 요즘 욕심이다. 전체를 보아내지 못하고 부분만 보아냈던 젊은 날이 아프다.


 제3의 정원은 네모난 연못이 두 개나 드리웠다. 물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 마음까지도 맑아질 것 같다. 나는 작가와의 만남을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이들이 잔 돌멩이도 던져 잔물결이 이는 것도 보고, 첨벙하는 소리도 듣기를 원한다고 했단다. 손도 물에 담가 보고. 이것이 진정한 작가의 마음 아닐까. 정물처럼 가만 두어두는 것이 아닌. 눈만 껌벅이는 연못이 아니라 사람들과 숨 쉬는 못이 되기를 작가는 바란다. 너무나 좋았다. 편안하고 푸근한 물정원이 될 것 같다. 보는 정원을 떠나 느끼는 정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다가왔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연못에 풍덩 빠지면 두 개의 달이 될까. 달 거울이 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그곳에 있기가 어렵겠지만 또 누군가는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 동에서 서쪽으로 건너가는 보름달이 연못 속에 비추이면 계수나무도 정원에 심어지는 시간이 될지.


 산에 있던 나무들 중 그대로 정원을 차지한 친구들도 여럿 있다. 터줏대감이다. 감나무들이 작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국정서를 온몸으로 나타내어서 그런가. 나도 작은 애기감이 열리는 감나무를 사야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정원 작가들도 감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놀랐다. 같은 편을 먹은 듯 어깨가 으쓱거린다.


  봄에 연한 순이 돋고, 여름 진초록으로 싱그러운, 가을엔 잎과 열매로 타는 듯 계절을 몸말로 나타내겠지. 겨울에는 잔가지가 없어 선이 아름답다고 한다. 눈이라도 내릴라 치면 빨간 홍시가 눈옷을 입는 것도 멋지다고. 감나무의 존재가 다르게 다가온다. 감나무가 서있는 정원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숲 속에. 고욤나무 몇 서툴게 서성이리라 생각했는데. 감이 곱게 익은 연못의 정원이 어서 보고 싶다.

 

 자생종 나무들이 어우러졌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꽃, 쌈, 차 토종자생허브들이 놓였다. 바크가 깔린 곳에 우리의 꽃들이 가냘프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니 이것이 정원의 멋이라는 실감이 난다. 정원 하면 큰 단위로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것 같다. 다디 단 마음이 차오른다.

 

 정원에 들어서서 작은 것들의 흔들림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달빛 비치는 날에라도 작은 연못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큰 기쁨을 누릴 것 같다. 산 하나를 몽땅 정원 작가들이 연출한 정원이 드물다고 다. 작가 정원에 들어서면 좋은 기운이 마음 가득 채워진다.



                     

작가의 이전글 달빛정원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