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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Aug 18. 2023

달빛정원 8

대숲에 은하수가 흐른다

 도란도란 이야기소리와 물을 끼얹으며 또르르 웃음소리도 묻어난다. 넙데데한 빨래 돌들이 밤에는 걸터앉는 자리가 되었다. 마을 앞 냇가는 깊지 않았다. 꼬마 아이들이 물속에 들어가면 손 집고 뜰만큼. 어른이 일어서면 무릎높이. 풀 섶을 살짝 뒤지면 숨어있던 물고기들이 내빼느라 바빴다. 물풀이 자라는 가장자리에 조심조심 살금살금 다가가 양손을 벌렸다가 모으면 물고기들은 소리를 못 듣는지 미끄러운 느낌의 촉촉한 것들이 손바닥 안에서 파드닥거렸다.


  여름 한낮이 지나고 어둠이 내리면 꼴을 베고 돌아온 아버지는 모깃불을 지폈다. 다 늦은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논두렁 사이 길로 냇가로 향한다. 밝은 빛깔 돌을 찾아 옷가지를 눌러놓고 목욕을 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태어난 근원지가 아닐까 다. 달빛이 없어도 친구들과 옷을 바꿔 입은 적이 없는.


  어둠이 내린 들판은 아무 말하지 않는데도 조용히 하라고 강요하는 듯 우리는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짙푸른 나락 잎들이 어두움과 섞이면 어둠보다 더 짙은 묘한 색으로 출렁였다. 거기 있는 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아는 체하기 싫은 무섬증이 켜켜이 낀 들녘.

 

 자박자박 돌아오는 길에 무수히 반짝이던 반딧불이가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날았다. 몇 마리 손안에 가두어 장난을 치며 집으로 가는 길은 털처럼 가벼웠다. 그 엷은 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말은 나중 들었겠지. 몇 마리의 반딧불이가 모여야 책을 읽을 만큼이 되었을까. 한지에 가둬야 했을 것인데. 아직도 벼들이 있는 곳에는 반딧불이가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날아다닐까.


  하늘에는 견우직녀별을 두고 은하수가 빛났다. 별들이 수도 없이 빛나는 곳을 은하수강이라고 했다. 칠월칠석에 견우직녀별이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그날은 잠을 안 자려했다. 두 별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보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곤히 잠들어 있던. 그날 아침은 땅이 젖어 있곤 했는데 엄마는 견우직녀별이 서로 헤어지기 싫어 눈물을 흘려 그렇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자 견우직녀가 만난다는 것은 한낱 이야기라는 것을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았다.


 그때가 생각나서 아이들이 자랄 때 견우직녀 그림책을 자주 읽어주었다. 내가 가진 추억을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별들의 움직임에 호기심을 불어넣으려 했는데 아이들은 그림책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내가 순진했던 것인지 아이들이 현실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대숲에 바람이 인다. 울창하다. 숲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가면 어린이 도서관과 각종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정원박람회 기간 저녁 여덟 시까지 봉사를 마치면 남편이 마중을 나왔다. 대숲에도 불이 켜진다 하자 도깨비불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대숲으로 가보자고 남편을 졸랐다. 밤에 숲으로 난 길을 걷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던 남편도 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덤덤한 그이와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나는 여전히 무탈하게 다. 살다 보면 조금씩 물이 들어가는지 나의 감성 반은 빛을 잃은 것 다. 떨기들에 반응하않는 것이 이해가 어렵다. 쌓아놓은 추억이 달라서 인가.


  은하수가 대숲에 내려앉아 쉼 없이 반짝거린다.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하늘에  있던 별들이 갑자기 대숲에서 일렁이는 것 같다. 바람에 물결 되어 흐른다. 대밭이 갑자기 소요스럽다.

 은하수를 잊어버리고 지낸 시간들이 늘어만 간다. 그 많던 별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잊어버렸나. 그건 아니다. 오늘도 선선한 바람이 풀어놓아지자 바깥에서 조각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만 흐르고 있었다. 별이 보이지 않았다.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던 하늘을 보며 반딧불이로 장난을 치던 아이도 어딘가숨어버렸다. 


 달빛정원 대숲에 은하수 떨기들이 반짝인다. 그렇게 작은 꼬마 반짝 전구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실낱같은 조명들. 요정이 숨을 불어넣었나. 살아있는 별무더기가 빛을 내는 것 같다. 해마다 트리를 장식하기에 쪼끄만 전구들은 알고 있다 싶었는데 아닌가 보다.

  대숲에 빛이 일렁인다. 대잎이 몸을 떤다. 빛이 흔들린다.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은 나만일 수도 있다. 내가 나에게 주문을 걸었나. 은하수 길을 걷고 있다고. 너무 황홀했다.  그 밤 별빛에 둘러싸인 길을 걸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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