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수국 동산이다. 때를 맞추어 물이 주어지게 되어있고 갓 벙그러지기 시작했으니 이슬 머금고 피어있는 꽃 같다. 친구들이 그레이스 정원 못지않은 수국정원이라며 좋아한다. 수국은 반 양지를 좋아한다. 산속이라 빛이 부족하여 필까 싶었는데 예상을 빗나갔다. 집에 있는 원예종하고 다른가. 신품종인지도 모른다. 월동온도가 삼십 도이면 충분히 밖에서 겨울을 날 수 있어서 그 이쁜 얼굴들을 내미는지.
우리 집 수국은 마당에 내어놓으면 눈이 얼어 깻잎 수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잘 지내다가 하루나 이틀의 강추위에 꽃눈을 닫아버린다. 실내로 들이면 또 꽃을 안 보여준다. 낮은 온도를 피부로 느껴야 하는 센서를 가지고 있으니 신비의 세계다. 비닐하우스에서 애지중지 겨울나기를 시킨다. 무가 온 하다가 온도가 많이 내려가는 날에는 촛불하나 켜 놓는다. 보답하는 것처럼 한 달여 먼저 꽃을 보여주는.
다리를 건너 수국꽃밭을 지나면 빨간 모자가 다녔을법한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왼쪽으로 버섯 체험 장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집라인 오르내리는 곳이 있다. 그곳에 포토 존을 만드는 일을 시민정원사들이 체험수업으로 일했기에 몇 번 갔다.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없었던 문이 떡하니 서 있다. 분위기가 좋았으면 소리라도 쳤으려나. 영화나 책에서 보았던 비밀의 문들의 모양새라든지, 운치 있는 풍경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생뚱맞은 아주 평범한 나무문이었다. 어떻게 문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문을 지나서 산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였나. 이리 뜯어보고 저리 보면서 한참을 서성였다.
의견을 내고 누군가는 동의를 하고, 손뼉을 치는 지지가 있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보는 사람 마음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야 문하나 서 있을 수 있는 것이 공무원들의 세계인데. 장미 아치를 둘러야 하나, 보랏빛 등꽃이 좋은가? 흰색의 으아리 꽃으로 감아올려야 할까. 혼자 김치 국부터 마시며 요리조리 살펴본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면 진짜로 비밀을 간직한 문 같아 보일 수도 있겠다. 저 만치서 남자 두 분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이제 막 작업을 끝내고 반응을 살피고 있나. 그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숲으로 난 문을 지나 집라인 쪽을 향하여가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조형물이 있다. 커진 엘리스와 토끼와 카드가 나온다.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이상한 나라를 여행할 수 있으려나. 빨간 모자가 방금 지나갔을 법한 분위기에 버섯이 자라고, 이상한 나라까지 나타나고 묘한 분위기에 젖는다. 포토 존 만드느라 오전부터 일하는 분들에게 비밀의 문이 생겼더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별 관심 없는 것 같아 서운했다.
호기심에서부터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끔 아직도 현실감이 부족하여서 저런 것들에게 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그냥 문이 생겼네 하고 지나가면 되고, 엘리스네 동네가 왜 여기에 있지 하면 될 터인데, 뜯어보고 짚어보고 생각하니 딱 어린아이 모습을 아직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아이 때 누리지 못한 것들이 많았었나 싶어 생각의 꼬리 잡기를 시작한다. 아직 새로운 것에 반응하고 눈을 반짝이고 신기해하는 모습이 남아있으니 어쩌랴. 스스로마음 나이가 젊다고 두둔해줄 수밖에.
정원박람회 기간 체험부스에 봉사하러 갔었다. 그 비밀의 문과 별로 떨어져 있지 않아서 산책을 하는 중에 “언니가 비밀의 문을 맨 먼저 지나갔다면서요.” 반응 참 빠르다. 기억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내가 맨 먼저 지났을지 모른다고 했는데 문을 처음으로 통과한 사람으로 말한다. 내가 새로운 문을 먼저 지나갔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샅샅이 뜯어보고 옆 뚫린 공간으로 다시 나와 보던 어른아이로 돌아갔던 건 맞다.
문이 설치되니 뭔가 동화가 완성이 된 느낌으로 마무리가 된 것 같다.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찜찜한 것처럼 이야기의 시작점처럼 무대로 들어가도록 부추기는 추임새 같기도 하다.
달빛정원 한쪽에 동화가 숨어 있는 숲이 있다. 그곳으로 난 비밀의 문을 지나서 가면 악어 떼가 나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