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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Sep 02. 2023

달빛정원 10

먼먼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처럼

   지나간 시간과 앞으로의 일들, 그 가운데 지금이 수평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몇 편 의 달빛정원이라는 글을 내 중심으로 풀어놓았다. 열 편을 써보기로 마음먹었기에 번호를 붙여가면서. 큰 제목을 붙이는 것이 맞는지, 소제목을 겉으로 드러내야 하는지도 몰라서 그냥 두었다. 어떤 시점을 기억하고 싶었기에 부족한 대로 밀고 나갔다.


 그렇게 맘을 먹으니 청개구리처럼 글쓰기가 싫어지기도 했다. 멍석을 깔아놓으면 하던 짓도 안 하고 싶은 것처럼 건너뛰고 쉬기를 밥 먹듯 하고. 누가 조른 것도 아닌데 부담스러운 숙제를 안은 것처럼 미루고만 싶었다. 번호를 안 매겼으면 흔들렸을지 모른다. 정원박람회가 끝난 지가 언제인데 마무리를 이제하고 있으니. 이렇게 써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져보았지만 마음먹은 일이니 잘 쓰든 못 쓰던지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같은 제목으로 열 편의 글은 처음이라서.


  월아산 국가정원을 목표로 삼 년 전 시에서 정원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토론을 했었다. 곧 시민들에겐 마음을 모아 달라는 것이었던 듯. 아직도 잘 있는 산을 파헤친다고 반대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정원이란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엄청난 재정이 들어가고 미로처럼 끝이 없기 때문이다. 물 붓기는 시작되었고 첫출발치곤 반응이 좋았다. 정원박람회 첫 해여서 그런지 풀어야 할 숙제들이 이곳저곳에서 얼굴을 삐죽이 내민다. 담당자의 말이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유지보수 하느냐의 문제가 남았다며 걱정스러운 듯했다. 내년에는 다른 담당자가 정원 관련 업무를 맡지 않을까 싶어 불안해진다. 그렇게 되면 정원의 걸음은 또 어떤 모양새가 될지! 일하는 이들과 지시하는 것은 다르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으니 쉬엄쉬엄 시간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모두들 좋아하는 정원이 되지 않을까.


 삼십여 년 전에 이곳에 내려왔다. 아이들이 갈만한 놀이시설이 거의 없던 시절, 부모로서 한 일이 도서관에 같이 가던지 책 빌려주는 일밖에 못했다. 요즘은 아이들이 체험하고 놀 수 있는 공간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그때 아이들을 낳지 말고 요새 낳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웃어본다. 고새 몇십 년이 흐르고 좋은 곳이 많이 생겼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싶지만 다시 키운다 한들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닐지.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아이들을 끌고서 월아 산을 자주 찾았었다. 남편 친구가 그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어서. 사람이 집에 있건 없건 산이 거기 있었다. 아무 때나 가도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매화가 피고, 벚꽃이 꽃구름을 이루었다. 아이들은 놀고 나는 취나물을 뜯던. 조롱조롱 물고기 알처럼 린 빨간 앵두를 자꾸만 입으로 가져가고 시금한 보리수를 멋모르고 따먹던. 세월이 가면 그런 것들이 추억이다. 시민정원사 참여정원에 유난히 열심을 내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이지? 내 무의식 속에 고마운 산이라는 감정이 올곧게 그어져 있었나 보다. 산에서 아이들과 보낸 시간들이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였다는 것이 나중에야 짚어졌다.


 남편 친구 집이 있었던 곳은 지금 목재 체험장이 들어섰다. 산불도 한 번 났었는데 산은 치유가 되고 온 산이 정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옛 모습은 눈 씻고 찾아도 아무것도 더터지지  않는다. 웅장한 돌 정원과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의 빛깔들이 곱다. 내 얼굴보다도 큰 라임리키 수국이 흰색에서 녹화가 될 때까지의 길을 거닐면 다른 세상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이야기를 산만하게 풀다 보니 갈지자가 되기도 하고 뭘 말하고 싶은지 뚜렷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지만 달빛정원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그냥 거닐면 좋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정원. 먼먼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처럼 다정한 곳. 보드라운 마음이 솟쳐지는 쉼이 있는 곳, 가을의 월아산은 또 어떤 모습을 펼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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