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 Sep 09. 2023

사람 잎

첫 작품

  그녀는 붙였다 뗐다를 부지런히 했다. 열 명 안쪽의 사람들이라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작은 도서관이지만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모였다. 앞으로 이 나라의 공동체의식이 마을도서관에서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여름이 이우는 길목이지만 꽃부채를 만든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기보다는 벽면장식용으로서의 가치를 더 크게 두었다. 주로 어르신들이다. 오십 대 후반이 두어 사람. 그이는 젊은 층에 속한다.


 식물교실 강사로 가서 사람들이 분주한 것을 보면 내 마음까지도 설렌다. 한 시간이 좋은 기분으로 꽉 채워진다. 아이만 손과 눈의 협응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집중할 것들이 필요해지고 새로운 것에 자기를 자꾸 내어놓아야 한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다. 한 분 한분이 꾸미기를 하면서 조용할 정도다. 디자인부터 완성까지의 과정을 오롯이 혼자서 해내어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란다.

 

 누름 꽃 매트를 샀다. 마당에 핀 꽃들이 시들지 않고 더 긴 시간을 머물게 하고 싶었다. 책갈피에 던 것인데 많은 양을 쉽게 말리기 위하여다. 색감들이 선명하다.

 꽃이 피어나는 것으로 먼저 즐거워하고, 꽃을 따서 책상에 죽 늘어놓고 예뻐라 눈 맞추고, 누름 꽃으로 간직된 느낌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꽃과 함께인 삶이 되었나.


  수업에 들어가기 전 준비물을 부탁한다. 거기다 더하여 압화 꽃을 가지고 가 곱게 펼쳐놓으면 누구라도 마음이 붕 뜰 수밖에 없다. 가지각색의 꽃으로 오롯이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 마지막에 날짜와 이름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이나 명언을 뒤편에 쓰라고 했다. 그이는 첫 작품이라고 썼다. 도서관에서의 첫 작품인지, 평생의 것인지 모르지만 가슴이 뭉클하다.


  얼마 전부터 필사동아리에 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그대로 따라 쓰기 동아리가 굳이 필요할까 싶었다. 그냥 혼자 하면 될 것에 의미를 두는 것 같아서. 나름의 이유가 있긴 했다. 자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다 보니 펜글씨가 예술의 틈바구니에 끼려고 하고 있는 듯.


 거기서 작은  책을 만들었다. 종이죽을 만들고 틀에 부어 말린 다음, 실로 엮었다. 꼬마 책이 완성. 저 작은 속을 무엇으로 채우나. 어느 분은 『메리골드 세탁소』를 읽으면서 금송화차를 마셨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찻잔 안에 꽃잎까지 너무 생생하게 그려낸 사진을 올렸다. 그것을 보고 요즈음 한창 꽃 말리기에 빠져 있는 나는 그것으로 꾸미기로 했다.

 

 표지가 잎으로 둘러싸였다. 제목을 「잎 없이는 꽃도 없다」로 붙였다. 아름다운 노랫말이나 좋아하는 시로 안을 메우기로 했는데 제목하고 안 맞는 것 같은. 우리는 꽃에만 주목을 하는 경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꽃 지고 나면 무슨 나무인지 모르는 것이 태반. 그래서였을까?  내 책에서 만큼은 잎으로 주인공을 시켜주고 싶었는지도.  잎이 없이는 꽃도 열매도 없다는 사실을 매번 잊는다. 봄에 잎 없이 피어나는 꽃들은 뭐냐고 한다면. 지난해 떨어져 간 잎들이 미리 양분을 몸속에 저장해 놓고 홀연히 떨어져 내린 것이다. 나는 사람 잎 노릇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작은 책을 꾸미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풀이 마르는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다음 페이지를 해야 되어서이다. 꽃색이 변하지 않게 꽃잎 위에도 풀을 바르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니 헤어드라이기를 이용하면 금방 할 수 있었을 것을. 

 

 먼저 시 두 편은 적었다. 다른 쪽에는 며칠을 두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해치우듯이 하면 꼭 후회가 찾아왔었기에. 자주 불렀던 노랫말을 집어넣을까. 짧은 명언을 적을까 곰곰 궁리하기로. 살면서 잊히지 않는 중요한 장면을 적어볼 수도 있겠다. 곧 누름꽃으로 만든 나의 첫 작품도 나오겠지.         

작가의 이전글 달빛정원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