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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Sep 23. 2023

백합의 골짜기

엄마의 선물

  엄마를 뵈러 갔다. 이제는 거반 일 년이 다 되어 가니 엄마도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적응을 하시는 듯하다. 거동이 불편하니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를 생각하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선뜻 모시지 못하는 것 때문에 죄송한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내가 나를 잘 알듯이 자신이 없었다.

 

 요양사 자격증을 딸 때 실습을 간 요양원은 규모가 컸다. 분위기가 뻣뻣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어르신들이 입소하여 계시니 그렇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겠지. 그 와중에도 매일 와서 밥을 먹이시는 아들도 있었다. 그 아들이라고 젊지 않았고 할아버지 수준이었다. 며느리들은 잘 오지 않고 주로 딸들이 온다고 하였다.


 엄마가 계신 곳은 작은 요양원이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좋아 안심이 된다. 멀리 계시니 자주 가 뵐 수가 없다. 행사처럼 한 달에 한번 만나 뵈러 갈 뿐이다. 갈 때마다 너 힘드니 자주 오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지만 그 마음 깊은 곳을 헤집어 본다면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을지. 그 말에 살짝 업혀가고 싶은 생각이 슬그머니 들 때가 있긴 하다. 특히 몸이 내 마음을 따라주지 않을 때 슬그머니 타협이 하고 싶어 진다. 이번처럼 명절이 있어 다른 자식들이 왔다 갈 때는 한번 빼먹어도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간사한 마음이 든다. 엄마가 이 모습을 안다면 서운해하실지.

 

 칠월이었다. 엄마를 뵙고 나와 ‘엄마의 정원’에 들렀었다. 와! 얼마나 많은 백합이 피어 있던지. 마음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많은 백합을 본 적이 없었다. 무작정 좋았다. 거닐며 보고 카메라에 담고. 엄마의 선물 같다는 생각. 엄마에게 갈 일이 없으면 그 정원을 거닐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은 이렇기에 살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몇 시간을 달려 피붙이를 보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시간을 지나면 보답인양 꽃들이, 바다가 너울너울 서성이며 부른다.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백합꽃이 하얗게 피어 있는 곳에 이르기까지 갈등이 있고 수고가 있고 의무가 있다.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의무는 언젠가 제 할 일을 했다 싶으면 멈출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바탕이 된다면 힘겨워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고린도전서 사랑장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사랑만이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는 방법임에 틀림없다. 백합꽃이 항상 피어있지도 않다. 한 때 피었다 지는 한철 꽃이다. 골짜기를 지나기에 힘이 겨울 수밖에 없는데 거기 가끔 백합꽃이 우리를 위로해 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아닌지. 지치지 않으려면 백합꽃을 늘 발견해야 하는 예민함을 가져야 한다. 백합의 종류는 다를 것이지만 자기만의 백합을 발견해야만 무엇이든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요양원에서 조금 가면 추억의 바다도 나에게는 백합이 될 수 있다. 어릴 때 외갓집은 바다가 가까웠다. 거기에 모래사장이 있었기에 늘 가서 거닐었다. 마음이 트이는 느낌 때문에 좋아했는지 동화책에서 본 그림들 때문이었는지 바다로 가고 싶어 했다. 엄마가 계신 요양원 근처에는 모래사장이 긴 바다가 펼쳐져 있다. 내 마음을 언제나 받아줄 준비를 하고서.

 

  엄마에게 가면 바다도, 백합이 만발한 정원도 볼 수 있다. 엄마의 마음처럼 거기에 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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