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강가로 나갔다. 강은 새들이 들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물이 말랐다. 큰 개울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밤새 켜진 가로등이 힘이 부쳐 졸고. 살짝 눈이 내렸다. 눈꽃이 피었대도 안 피었대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해가 나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이어서 더 소중하다. 조금 내린 눈에도 설렌다. 설렘이 많을수록 마음이 푸릇푸릇 해진다. 차들이 엉거주춤 간다. 도로를 지나 둑으로 올라섰다. 자전거가 지난 자국이 뱀이 지나간 것만 같다. 참새 발자국 찍듯이 조심스레 걷는다. 살금살금 걸음이 겁먹은 아이 같다. 계단이 아닌 완만한 길을 택하여 둔치에 이른다. 시간이 다 되었는지 가로등이 일제히 숨을 거둔다. 푸르스름해지는 사진 속. 세 사람의 발자국이 가지런하다.
눈꽃이 성기다. 그마저 고맙다며 사진을 찍는다. 순간을 잡아놓은 눈동자 같다. 추억을 먹고 살아갈 날들을 위하여 기억의 보관소에 장치를 하는 것만 같은. 눈이 오는 것이 축복같이 느껴지는 동네에 살다 보면 눈 오는 날에 대한 기억들을 모조리 모아놓고 싶어 진다. 새해를 시작하며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 않았다. 순수함을 지켜가자 정도. 자신에 대한 실망을 덜 하고자 하는 얕은꾀인지도.
이년 전 삼월 초에 제법 눈이 많이 내렸었다. 남편이 일 한 가지 보고 수목원으로 조금 늦게 출발했다. 햇살이 너무 빛나지만 않았어도. 종일 눈이 내려주었으면 어땠을까. 눈부신 햇살에 눈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멋있는 설경을 볼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벼르던 일이라 차로 삼십 분을 달렸다. 온 산들에 눈꽃이 피었다. 수목원 나무들에 핀 눈꽃은 모양이 흐트러지는 몸짓이었다. 듬성듬성 핀 눈꽃을 붙잡느라 안간힘을 쓰며 수목원 한 바퀴. 묻어나는 아쉬움. 아내 마음을 더 헤아려 주지 못하나 싶은 원망하는 마음이 눈뭉치처럼 커졌다. 그 마음을 누르느라고 얼마나 애썼는지. 눈이 오면 아침 일찍 수목원으로 가자고 누누이 말했었는데. 따져보아야 감정의 골만 패일 것 같아서 삭였던. 멀리 숲의 나무들에 핀 눈꽃을 보며 숨을 돌렸다. 채워지지 않은 눈 구경에 범칙금까지 날아오고.
그래서 올해는 말없이 혼자서 강으로 간 것이다.
일 하면서 꼬마 눈사람을 만들었다.
장갑을 낀 손에서 뭉치지 않고 겉도는 싸락눈
맨손의 따스함이 더해져야 단단해지는 눈뭉치
해마다 보던 사진 속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을 풀어헤친 날
눈사람 가족이 나란하다
찡긋 하는 것만 같아
마음과 마음에 웃음이 넘나 든다.
눈사람을 젊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미루어 짐작하는 사람이 있다. 눈사람을 만드는 것까지 나이의 많고 적음의 경계를 나눌 것은 아닌데. 동심을 품고 살아가는 자만이 더한 즐거움을 품을 수 있지. 언제 또 눈을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곳에 살면 속없다거나 철없는 것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 샌드위치처럼 이런 날을 끼워놓으면 삶이 팍팍하지 않을 것만 같은.
특별한 날은 맛있는 것을 먹어야 된다던 나이 지긋한 언니는 시장으로 달려간다. 뜨끈한 어묵국과 굵직굵직한 붉은 기운이 도는 떡볶이, 치자색 버무린 노란 튀김을 잔뜩 사 왔다. 추억의 음식으로 점심시간을 이어낸다. 행복감이 번지는 동화 속 같은 눈 온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