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를 품은 것처럼
지난봄 남편이 목화씨 세 개를 작은 옹기화분에 심었다. 설마 자랄까 싶었다. 그것도 실내에서. 나는 목화를 심어 재미를 보지 못했기에 반신반의했던 것. 싹이 한 개 올라왔다. 남편은 애지중지 돌보았다. 생각보다 잘 자라서 신통방통했다. 하루 종일 햇빛을 보아야 하는 본성을 거스를 수는 없는지 싱싱하지 않았다. 진딧물도 생겼다. 아무래도 실내에서는 어려운 것 같다며 나에게 돌보라고.
갑자기 빛 보임을 하면 안 되니까 ‘순화’ 과정을 거쳤다. 서서히 빛에 익숙하게 하여 땡볕에서도 잘 자라도록 하는 것. 잘 키워보고 싶었다. 거름을 주어야 하는 양보다 많이 주었나 보다. 작은 화분에 있는 것 같지 않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기 시작했다. 야리야리한 꽃을 실컷 보았다. 여름이 다 저물어 가는데도 자주와 미색으로 꽃은 피어나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래도 주렁주렁 달렸다. 때가 되어도 다래가 입을 열지 않았다. 영양과다. 이러다 솜꽃을 못 보는 것 아닐까? 남편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실망스러웠다. 과정이 중요하다지만 결과물이 시원치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성장이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형인 목화나무.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저물지 않고 계속 진행형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시간은 흐른다. 때라는 것을 어길 수야 있을까. 하얀 솜뭉치를 한꺼번에 매달고 우아한 몸짓으로 “나 목화야” 하기 바랐는데. 꿈은 스러지고 새 꿈을 다시 만들어 품어야 한다.
1월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목화나무는 원래 있던 자리로 진즉 되돌려 놓았다. 솜꽃을 피우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과는 달리 시나브로 피어났다.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예쁘지 않다. 하얀 솜꽃으로 덮인 우아한 화분을 바라보는 것이 목표였지만 마음뿐. 그나마도 피어주어 고맙다며 마음을 쓸었다.
식물이 지지리 맘에 들지 않을 때는 순간의 감정에 못 이겨 패대기치듯이 싹둑 잘라내 버리면 속은 시원하다. 눈앞에서 보기 싫은 것을 바로 치우는 것만큼 쉬운 것이 없듯이. 나무를 키우면서 참아내는 자세를 조금 익혔다. 식물을 키울 때 기다려 준 것에 대한 보답은 받는다. 그들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돌봐주는 것이 꽃을 키우는 사람의 일이다. 새해에 다시 목화 꽃 키우기에 도전해보려 한다. 꽃다발 같은 목화솜을 듬뿍 달아 주기를 바라면서.
그 카페를 알고 나서 세 번째로 목화솜 꽃밭을 보러 갔다. 친구들은 겨울에 들른 것은 처음이었는지 내가 첫 방문했던 모습이랑 비슷하다. 감탄하고 사진을 찍는다. 두 번 세 번 보면 신비로움은 벗어지지만 그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이번에 핀 솜꽃들이 더 예뻤다. 늦게 심어 생장기를 늦추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지금 저기 녹지 않는 눈이 내린 것 같은 꽃밭.
그곳에는 계절이 그대로 묵혀있다. 과거를 품고 있어 더 끌리는지도 모른다. 대궁만 남은 해바라기는 가로등 같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풍선초 마른 것들도 바스락 거린다. 연두 빛 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모양으로 설레게 하더니 앙상한 그림자로 겨울바람을 맞는다. 까만 씨에 하트를 그리고 있어서 신기한. 지나간 계절을 품고 있는 뜰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되비추고 있어서 애틋한 것은 아닌지.
목화솜 꽃처럼 다시 피어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 안에서,네 안에서 아름다운 것들만 피어나면 좋겠다. 풍선초가 시절을 지나 하트를 품은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고운 것들이 담기면 어떨까 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