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루의 블루베리 꽃이 신통치 않았다. 분갈이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 꿀벌의 기척도 알 수 없어 블루베리를 못 먹겠거니 했다. 시간이 흐르자 거뭇거뭇한 블루베리가 드문드문 눈에 띈다. 한 주먹이 될까 말까 따서 나눠먹기를 두어 차례. 꽃이 시나브로 피었으니 꽃이 피어난 차례대로 블루베리도 익어갔다. 나의 마당에 열린 열매는 몇 알 되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즐거움은 배가 된다.
해 질 녘 한가로이 의자에 앉았는데 새 한 마리 블루베리 나무로 날아든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매하나 물고 포르릉 전깃줄로 날아오른다. 열매를 물고도 소리가 나오는지 ‘삑’ 한다. 저보다 조금 더 작은 새가 화들짝 곁으로 날아든다. 어미 새 부리에서 새끼 새 부리로 전해지는 블루베리 한 알.
어느 날 다 저녁때 블루베리 나무를 살핀다. 몇 알의 검은색 작은 열매를 어미 새처럼 남편의 입속에 넣어준다. 그다음 날 아침 의자에 앉았는데 얼마 전에 보았던 새가 금꿩의 다리에 앉아 뭘 자꾸 따 먹는다. 블루베리 열매가 없으니 동글동글한 꽃을 따 먹네. 아 차 싶었다. 어제 해질 참에 딴 블루베리 몇 알은 남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두었어야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늦은 가을이면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감을 따고 가을 설거지를 하러 갔었다. 긴 장대를 입처럼 벌려 나뭇가지로 고정하고 고무질로 묶었다. 탄성을 이용하여 감을 땄다. 감 몇 알씩은 남겼다. 남편은 아마 어렸을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으리라. 온 동네가 그랬다. 서리가 내리고 나뭇잎 져버린 감나무에 빨갛게 달린 홍시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없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 말고는 몸으로 배운 지식이 없다. 이론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을 뿐. 감처럼 눈에 잘 띄는 것으로만 까치밥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블루베리처럼 작은 것은 새들과 나누어 먹는다는 생각이 아예 떠오르지 않았다. 아는 분은 하도 새가 블루베리를 먹어서 약간 덜 익었을 때 미리 수확해서 후숙을 시킨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천신 할 수가 없다고. 블루베리 나무 옆에 같은 시기에 익는 봄보리수를 심어 보리수를 따 먹도록 유인한다고도 했다. 블루베리 차지가 누가 될 것인가의 작전 같다. 다행히 나에게는 작은 블루베리 두 나무. 욕심내지 않고 사이좋게 나눠 먹는 것으로 정리를 한다.
올해 유난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 금꿩의 다리가 멀대 같다. 줄기가 꿩의다리를 닮고 꽃잎보다 수술이 도드라지니 금꿩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졌다. 거기 새가 앉아 고개를 자꾸 수그린다.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서 새가 깃들인다더니 눈앞에서 마주한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다. 새라고 열매만 먹는 것은 아닌가 보다. 새들도 미각이라는 것이 있나.
성경에 보면 추수 때 가장자리의 곡식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남겨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나누며 살라는 명령이다. 명령은 지켜도 되고 맘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마저 머리로만 이해했었다. 아침마다 꽃에 물 주다가 잘 익은 블루베리를 보아도 욕심내지 않았다. 새와 나눠 먹으면 마음이 자랄 것 같은 묘한 기분. 그러나 이미 새는 보이지 않았다.
새가 꽃을 먹고 있는 사진을 가족 톡에 올리면서 개똥지빠귀라 추측했다. 잠시 뒤 딸이 직박구리 사진 몇 개를 죽 올린다. 직박구리가 맞다. 아들이 초등학생 때 우표 모으기 할 적에 직박구리가 나왔다고 알은척을 한다. 텃새이며 사람들과 친숙한 새이기 때문에 우표에 실렸을 수 있단다. 직박구리가 나무도 아닌 금꿩의 다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며 신기해하는 아침. 내년에 직박구리가 찾아오면 블루베리 몇 알 더 내어놓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