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전해지는 마음

감동과 존경의 마음

by 민진

론볼장에 일하러 나다닌 지가 두 해가 넘었다. 서먹한 시간을 지나서 자연스럽게 하나 된 것 같다. 며칠이 못 되어 가르쳐 드리지 않은 분으로부터 카카오 톡 메시지가 왔다. 근로지원을 하는 분에게 혹시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냐고 다그치듯이 했다. ‘왜 남의 전화번호를 함부로 알려주느냐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게 지나갔다. 그 뒤로 거의 날마다 카카오 톡으로 그분에게서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일요일을 빼거나 아니 그날마저도 왔다.


그분은 팔순이셨다. 군대에서 경추를 다쳐 장애를 입게 되었다고. 사모님은 그 당시 병원의 간호사로서 간호를 하다 사랑을 키워냈던 모양이다. 집안의 온갖 반대에도 결혼을 하셨고 지금도 참 다정하게 사신다. 그런저런 사정을 알고 내 마음이 누그러졌다. 좋은 글귀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인사도 온 마음으로 하회탈모양을 만들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이해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그분이 보냈을 수많은 시간들을 헤아려 보기도 했다. 몸 다치고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야만 삶을 살 수 있는 세월이 육십여 년 이라니. 모든 것을 다 빼고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감동과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날아드는 카드에 답 글을 달기 시작했다. 어떤 날에는 몇 번의 카드가 날아들었다. 손전화기를 가까이하지 않은 요즘에도 꼭꼭 답을 드렸다. 그 글자 하나를 치기 위하여 애썼을 것을 생각하면 그냥 지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몸짓이라도 알려 드리고 싶었다. 몸의 고통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모습에 대한 존경과 감동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으로 가려운 곳 하나 긁지 못하는 손으로, 카카오 톡 메시지 창에 좋은 글귀가 쓰인 카드를 고르고 골라 이분저분에게 보내는 아침 시간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소중한 일과라는 것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너무 잦은 메시지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엊그제 그분으로부터 내가 메시지에 가장 호응을 잘한다고 했다. 칭찬으로 받은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물 한잔 마신 기분이었다. 모두들 나처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언제든 보내 주시면 잘 읽겠다고 대답했다. 세대차이가 이십여 년이다. 때론 동영상에 트롯음악이 날아오기도 한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냥 틀어놓고 죽 올라가는 가사를 음미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지 않기에 듣고서 답을 달려 노력한다. 구구절절한 노랫말이 어떤 때는 가슴을 찡하게도 하지만 아직 트롯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어제 그제 그분으로부터 아무 말이 없다. 론볼장에도 나오지 않았다. 이년을 하루같이 날아드는 고운 글귀들이 갑자기 뚝 끊어지자 뭔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이 허전했다. 내가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분이 팔십이라는 나이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분이라서 더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오후 느직하게 “선생님! 오늘은 모두 결석이네요. 카카오 톡도, 론볼장도요. 병원 나들이 가셨어요?” 하면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보냈다. 그 시를 읽으면 어쩐지 그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무 말이 없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아 조용히 하기로 했다. 다음날도 기다리는 카드는 날아들지 않았다. 그분과 늘 함께하는 요양보호사님께

“선생님 몸이 안 좋으신가요?”

“어젯밤에 응급실 갔다가 퇴원해서 안정을 취하고 있어요. 일단 코피는 잡혔어요.”

“에고 고생하시네요. 위로를 보냅니다. 얼른 쾌차하시라고 전해 주셔요.”

“주무세요. 전해드릴게요.”

전화를 하는 것도, 뭐라 더 하기도 뭣해서 조용히 하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몸이 안 좋으신 것 같다고는 전했다. 전화를 해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을 보았다. 사모님 하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런 위로들이 모여 모여 우리는 마음이 따스해질지도 모른다.

사흘째 아무 말이 없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로 해석이 된다. 언젠가는 가질 이별을 연습하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서서히 뭔가를 잃어가는 것 만 같다. 그분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마음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정현종 님의 시를 읽어본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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