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나비처럼 폴폴 날아와
작은 아이까지도 고사리 손으로 필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특하다. 아직 글도 제대로 모를 나이의 아이들이 글씨를 베끼고 있는 것을 보면 반반의 마음이 든다. 뺏어서 얼른 대신 따라 써주고 말고 싶은 급한 마음과, 반면 이 아이는 필사라는 것을 처음 해볼 수도 있겠구나! 싶어 완성해 보는 기쁨을 누리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다. 기다리고 있는 다음 사람들을 보면 앞의 마음이 더 간절해지지만, 그렇더라도 어떻게 하든지 아이가 다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는다. 어린 날의 책갈피 하나 마무리해 보는 동작이 그 아이에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비교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보기 좋다. 글씨가 삐뚤빼뚤 하든지, 가지런하게 잘 따라 썼든지 자신이 한 것으로 만족한다. 그 모습이 빛나는 조약돌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또한 내 또래의 어른들이 필사를 하는 모습도 나름대로 감격스럽다. 준비한 시나, 읽었던 책 중에서 만난 좋은 글귀를 요모조모 살펴보며 마음에 든 문장을 택하여 수놓아가듯 글씨를 색깔 종이에 채워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이년에 한 번 열리는 북페스티벌 행사에 필사모임도 같이했다. 시간을 들여 누름 꽃으로 아이들이 쓸 책갈피를 디자인하고, 도서관에서 동시를 읽으며 아이들이 좋아할 글귀들을 먼저 찾는다. 적거나 사진을 찍어 다른 선생님께 보내면 코팅을 하여 완성한다. 읽었던 책을 전시하고 필사한 노트를 펼쳐놓는다. 서리가 내려도 아직 뜰에 핀 꽃들을 가져와 조그마한 화병에 꽂아 놓는 멋도 부린다. 우리들의 이 년 동안의 모습들이 담긴 사진을 종이액자에 넣어 전시를 한다. 옆구리 뱃살이 보기 싫어 그 사진을 빼달라고 해도 살이 어디 보이냐며 그대로 줄 끈에 매어 벽면을 장식한다.
그이는 책갈피에 들어갈 말을 이모저모 살피고 읽어보더니 그대로 내려놓는다. 마음에 와닿은 말이 없나 보다 했다. 그런데 ‘그래 고마워’를 쓰고, 다른 페이지에 ‘그래 그렇구나’를 썼다. 순간 나는 멈칫했다. 누구에게 한 말일까? 공감과 고마움을 하나의 책갈피에 적는 모습이라니.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일까. 아님 가족에게. 또는 벗에게. 꼭꼭 여미고 있던 말을 꺼내 한 뼘도 안 되는 네모난 종이에 옮겨 적으며 되뇌었을 마음이 들어가 박인 것 같다.
그 말이 나비처럼 폴폴 날아와 내 마음에도 내려앉는다. 내게도 내내 필요했던 말. 그래, 그렇구나!로 공감을 해 주어야 할 순간들이 전구가 깜박이듯 깜박거린다. 나에게 무한 공감해 주면 안 되었는지 묻고 싶다. 뭘 그렇게 잘하는 것이 없냐며 다그치고 나를 향하여 눈 흘기던 날들은 아직 여전하기에. 이제는 못하는 대로 좀 봐주면 안 될까? 싶다. 스스로를 팽팽하게 잡아당긴 줄 같은 모습은 내려놓고, 부족한 대로 열심히 살아와줘서 고마워! 하면 안 될까? 가지런하지 못하고 갈지자걸음 같기만 한 나의 삶이라도 그래 그렇구나! 그래도 고마워!로 공감해 주고 싶은 날들로 살아가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