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살이 돋기까지

일상으로의 회복이 필요하다

by 민진

양파껍질처럼 각막을 벗겨 냈다는 소리일까. 뭔가를 긁어내더라고. 레이저로 상처부위를 소독했다는데. 지졌다는 것인가. 빛으로 그을렸다는 것인가. 깜빡이지 말고 초록점만 응시하세요. 시력이 안 좋은 쪽이 더 아팠다는. 자취방에서 커튼을 내리고 아픈 눈을 감싸 쥐고 동굴에 갇혀서 지낸 것 같다는. 겨우 밥만 챙겨 먹는 것으로. 휴대폰도, 컴퓨터도 가까이할 수 없어 음악만 들었다는.


‘톡을 못 봅니다. 전화로 해 주세요.’하는 말만 덩그렇다. 라섹을 하고 나서의 아들에게서 온 짧은 한마디. 당근과 블루베리를 사다 먹으라고. 눈에 좋다는 영양소를 섭취해 주는 것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눈 신경세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겠냐면서.

몇 년 전부터 라섹을 한다는 것을 남편은 반대하고. 좀 더 추이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아직은 이르다는. 나는 안경을 낄 수도 있고 렌즈도 사용할 수 있는데 꼭 굳이 수술을 해야겠냐면서. 아들도 겁이 나는지 섣불리 못하다가 올해는 물러서지 않고 아빠를 설득했다. 남편의 허락이 떨어지자 오히려 자신만의 고민에 빠졌다. 그 갈등의 굴레를 벗어나 빛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의사가 오라는 날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다. 다시 병원을 찾은 날 삽입했던 렌즈를 빼고 집으로 왔다. 하루에 네 번씩이나 여러 개의 안약을 넣는다. 약이 독한지 얼굴이 부르튼다. 상처를 소독하고 항생제를 넣고 건조하지 않게 물기를 묻혀주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서서히 안보이던 것들에 색이 입혀진다며 신기해한다. 귀로 듣는 책을 읽는다. 기타를 치며 시간에 음악을 싣는다. 다른 것들로부터 섬처럼 떠나 있다. 학기는 시작이 미뤄지고 일상이 눈과 함께 멈춰 섰다.

나는 아직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고 책을 읽기에, 이해하기 힘들다. 안경을 벗으면 몇 미터 앞에 있는 큰 글씨도 보지 못했다면서 형태만 어른거렸다는. 군대에서 안경 쓰고 총 쏘는 훈련할 때가 제일 불편했다는. “포로시 통과했다면서” 놀린다. “그래도 통과했잖아요.” 하고 눈을 끔벅인다. 막내만 빼면 모두 일찍 안경을 썼다. 가시거리가 짧고 텔레비전과 컴퓨터 때문일까. 필요한 영양소들이 부족했었나. 부모는 눈이 좋은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딸들도 렌즈를 많이 끼는 것이 걱정이 된다.

여섯 개월이 필요한가 보다. 그 좋아하는 축구를 못할 것을 생각하니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눈에는 약을 방울방울 떨궈야 한다. 공부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만큼을 견디면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의 시력을 회복하는 것인가. 일점 영까지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하니 기다려 봐야 한다.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어수선함을 견디고 눈의 힘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산책이라도 갈라치면 모자를 눌러쓰고 자외선 차단되는 보호안경과 마스크를 쓰니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화분을 한 개 사서 들었더니 꽃집 아가씨가 레옹이네요 한다. 화초가 레옹이 들고 다니는 것과 비슷하게 생겨서인가.


어서어서 아픔들이 지나고 다시금 일상의 회복이 필요하다. 아니 우리 모두 다 일상이 그립다. 새살이 돋아나기까지 참아야 하는지도. 그냥 지날 때는 모르다가도 살아가는 것이 흐려지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생활이 얼마나 평화이며 감사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수요일의 수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