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빠지는 눈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지구촌이. 긴장을 한 남편이 집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삼월인데 겨우내 걸리지 않던 감기에 걸렸다. 날마다 생강차를 보온병에 담아 가고, 새벽에도 저녁에도 입에 달고 산다. 열이 없고 기침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모든 모임이 취소되어 접촉한 사람이 없어서 지켜보고 있을 뿐. 가족 톡에서 아이들이 ‘코로나19’ 확진자 두 명이 완치 퇴원했다며 청정지역 진주라고 축하를 한다.
남편은 두 주에 걸쳐 어머니를 찾고 필요하면 언제라도 달려가야 하는 대기조다. 한 달에 한 번은 약을 타다 드려야 한다. 고뿔에 붙들렸어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의료원에 전화를 해서 팩스로 약국에 처방전이 보내지고 약을 준비해 두었단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오라고 한다. 같이 가야겠다고 하자 시기가 어느 때인데 겁이 없다고 눈을 흘긴다. 어머니의 폐가 약하기 때문에 집에 가는 것도 여간 조심스러운가 보다.
섬진강을 지나고 송광사를 비켜 가 돌담이 가지런한 자그마한 마을이다. 여름이면 흰 거품을 문 수많은 물줄기들이 바위를 더듬어 아래로 쏟아져 내리면 항아리처럼 호수가 물을 품는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옹기종기 정다운 집들이 모여 앉고, 잎을 떨군 감나무들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하늘에 주홍으로 박힌다.
순천 시내 약국에 들러 두툼한 약봉지를 챙겨서 너른 호수를 안고 돌아돌아 찾아가는 길. 눈보라를 헤치고서 가야만 하는 이미지가 떠 오른다. 겨울이면 일 미터가 넘는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을 하던 아이들. 가시 안에 숨어있는 알밤을 꺼내며 좋아하던, 덩이덩이 고구마를 캐며, 도리깨로 콩깍지를 재미 삼아 두드리기도 하던. 계곡물에서 실컷 놀다가 구풋해지면 할머니가 부쳐주는 호박 부침개를 냠냠거리고. 햇빛에 몸을 말리다가 다시 들어가 신났다. 추석에도 사촌들과 물가 너럭바위에 걸터앉아서 이야기하며 옛 추억을 더듬는 정다움이 뚝뚝 묻어나는 곳.
바지런하던 어머니는 세월을 품어 안고 집과 함께 덩그렇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싸목싸목 걸으시며 자식들이 언제 오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 일이다. 전화할 때마다 보고 싶다고 말하는 소리에 외로움이 묻어 건너온다. 새댁 시절 감당하기 힘들던 어머니. 시간이 지나자 힘의 기울기가 내게로 왔다. 인생의 무상함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한 번씩 미운 소리를 내는 나 자신에게 실망한다.
결핵을 앓아 요양원에 들어가셨던. 의사가 요구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오신 어머니. 혹여 아이들에게도 전염이 될까 염려했던 뜨악한 시절이었다. 결핵검사를 해보기도 했었다. 형님네가 미국에 살고 있어 둘째인 우리가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
막내인 넷째를 가졌을 때 아이 낳는 공장이냐고 하던 말이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따끔거렸다. 자신의 뜻대로만 해야 하는 어머님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곱고 순한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 것을 보면 어머님도 천성이 좋으실 텐데.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던 것일까.
시댁에 들렀다가 헤어질 때면 아들도 손자들도 안지 않으면서 나를 안아보자고 한다. 차마 안기지를 못한다. 손만 잡아드리지만 늘 후회가 된다. 지나간 시간들이 빤히 나를 내려다본다. 날이 밝는다. 남편은 이제 어머니에게 가야 한다. 눈은 퀭한데 바람을 가르고 눈밭을 밟는 것 마냥 다녀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