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를 헤치고서' 다음 편 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어기고,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슬픈 이별과 격리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순간이다. 도란도란 모여 놀던 노인정 문이 닫히고 홀로이 집안에 갇힌 듯 섬이 된다. 왕래가 끊기고 최소한의 사람들만 대문을 민다.
바람이 거세고 물 먹은 구름들이 자꾸만 내려앉는 날, 남편은 혼자 가기가 싫었는지 동행하자고 한다. 주문한 두툼한 약봉지와 마스크를 산다. 감기가 어머니에게 옮을까 봐 마트에서 필요한 것을 사서 약과 함께 우체국 택배로 보내자고 한다. 나는 가지고 가야만 한다고 우긴다.
호수를 따라 피어난 매화꽃들이 흐릿하다. 여린 분홍빛과 흰빛의 꽃들이 봄이 되지 못하고 어정쩡하다. 제 계절이 아닌 듯 어색하다. 마음의 빛깔 때문인가. 남편은 댐이 막아지기 전 수몰 지구에 있던 국민학교를 다녔다고. 다리가 놓여지지 않아 징검다리를 건너 다니던 그때,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나면 강 건너편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 올 수 없었단다. 옛 학교 자리, 집들이 있던 곳, 농사를 지었던 땅이 흔적도 없는 물속 세상이다. 끝도 없는 하늘을 끌어와 담아놓으니 물빛만 파랗다. 호수 위로 길게 놓인 다리를 지나 마을 초입에 들어선다.
계곡에 돌돌돌 흘러가는 맑은 물소리만 가득하다. 필요한 것 없느냐고 전화를 드려서인지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 현관문 앞에 서 있던 어머니가 춥다고 어서 들어가자고. 남편은 감기에 걸리지 않은 나에게 박스를 옮기고 바로 가자고 한다. 코로나가 사그라들면 오겠다고 하자. 우신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금세 가느냐고. 외롭다고 하신다. 어쩔 수 없다고. 손을 잡아드리고 나온다. 저녁을 지어서 먹으며, 고여 있는 말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내야 그늘 같은 외로움이 옅어질 텐데. 부모 자식 간에 그 먼 거리를 달려와 박스 하나 덩그렇게 밀어 넣어놓고 나오는 내가, 오늘 무정한 택배기사다. 어머니의 찬 손을 거두어낸다. 눈물바람의 얼굴을 못내 거절한다.
마을이 고요하다. 모두 격리된듯하다. 이웃집에 함부로 갈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이렇게도 웅크러지게 하는가. 한가로운 시골에도 공포가 하얗게 머문다. 아쉬움에 마음이 무겁다. 냉정함이 뚝뚝 묻어난다. 택배로 보냈으면 덜 서운할까.
물길을 따라 줄지어 선 벚나무들이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가지에 줄기에 이파리는 감추어두고, 거품 터지듯 꽃 먼저 벙글까. 바람 불어와 꽃눈 개비로 날아가버리면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까. 봄빛이 가득한 날 꽃길을 거닐 수 있도록 평화가 자리하면 좋겠다. 어머니는 몇 번의 벚꽃 피는 계절을 더 마주할 수 있을까. 삶이 꽃 따라 여울지는가. 인생이 무엇인지 어렴풋한데 세월은 저만큼 앞서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