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나뭇잎 위로 부드럽게 쏟아져 내리는 가을의 첫머리에 추석이 들어있다. 어머니는 아무리 바쁠지라도 멀리 있는 방앗간에서 눈가루 같은 쌀가루를 빻아왔다. 농사일 때문에 밤이 늦어도 송편은 빚던 어머니는 내일 백내장 수술을 한다. 몸의 창문이라 할 수 있는 눈이 긴 인생살이를 견뎌내느라 아프다. 세월이 저만큼 가면서 몸의 나이도 끌고 갔다.
아침에 백일홍 꽃대를 잘랐다. 여름내 꽃을 피워 주웠건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아직 꽃이 환하지만 이파리가 노르스름하게 마르고 하얀 점박이 병도 들었다. 뿌리를 내린 시간들을 잘라낸다. 양분을 꼭대기까지 올려 보내기 위해 뿌리들이 얼마나 깊게 내렸는지 살아있음에 대한 몸부림이 뭉클하다.
팥을 삶아 소를 준비하고 물을 끓여 익반죽을 한다. 굳지 않도록 잘 덮어놓고 송편을 빚는다. 오직 한 가지 색으로 늘 같은 모양이다. 만들어진 송편을 바로 쪘을 때는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식은 다음 먹으면 쫀득쫀득 만나다. 소는 팥과 콩고물에 설탕 넣은 것을 준비했기에 골라먹느라 애를 먹는다. 약간 노란빛이 도는 것을 찾느라고 살피다가 한 개 덥석 물면 팥이다. 입에 베어 물린 것만 먹고 나머지는 그대로 둔다. 나중 팥 송편만 남는다. 우리가 빚게 되면 아예 하얀 반죽을 소로 넣기도 해서 찾아 먹기도 했다. 지금은 팥을 좋아해서 팥죽을 사 먹으러 다니고 팥밥을 해 먹는 것을 즐겨하는데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팥을 싫어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이 자랄 때 송편을 빚었다. 색색의 익반죽을 하고 소로는 참깨에 흑설탕을 녹인 것만 준비한다.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아예 팥소는 생각도 안 한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결혼해서 예쁜 딸을 낳는데” 하면서 솜씨자랑이 시작된다. 호박, 나뭇잎, 별에 초승달 나오지 않는 모양이 없다. 아이들이 빚은 송편이, 쟁반에 삐뚤삐뚤 줄지어 선다. 찜기에 찌느라 나는 만들지도 못한다. 송편을 쪄 놓으면 자기가 조물딱 거린 것을 찾아 먹느라고 야단이다. 색색의 꽃 같은 떡들이 가지각색이라서 어디 내놓기는 뭣하지만 시댁에는 가져가곤 했다.
동서가 내년에는 자기 얘들도 함께하면 좋겠다고 해서 시댁에서 송편을 만들기로 했다. 준비해 간 쌀가루에 단 호박, 쑥, 당근을 갈아 익반죽을 하여 송편을 누가 예쁘게 하나 겨루었다. 여러 가지 알록달록한 모양인데 시어머니 얼굴빛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먹을 것을 가지고 아이들과 장난이나 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듯했다. 다음 해에도 송편을 한다고 했더니 펄쩍 뛰어서 사촌들과 송편을 빚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하얀 눈 송편만 만들던 어머니와 색깔별로 곱게 빚던 딸도 이제는 멈추었다. 한가위가 되면 시장에서 조금 사 먹고 만다. 마음이야 둘레둘레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빚어 먹고 싶다. 추억도 만들고 행복함에 젖고 싶기도 한데 무엇이 이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가. 그 긴 세월을 반달로 빚은 어머니의 떡은 그리움속에 묻혀간다. 어머니의 백내장 수술이 잘 되기를 기도한다. 안개 낀 것처럼 보이던 것들이 환하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추석 하면 송편과 겹쳐지는 어머니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