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마음이 뭔가 쿵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by 민진

가끔 다른 이로 하여금 기분 나쁠 수도 있고 나 때문에 누군가 언짢을 수도 있다. 인생이란 완전하지 않기에 좋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어제는 한 시간쯤 책을 보다가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밥을 같이 먹던 친구에게서 ‘점심 언제 먹느냐’ 하는 문자가 왔다. 열두 시 십 분쯤 먹으려 한다고 했더니 너무 늦다고 한다. 그럼 언제쯤 먹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았다. 열한 시 반에 먹었으면 한단다. 알겠다고 정리하고 식당으로 나갔다. 식당에 도착했는데 친구에게서 조금 늦겠으니 먼저 먹으라는 연락이 왔다. ‘그건 아니지 ’라고 답을 보냈다.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친구가 식판에 밥을 가지고 왔다. 이름을 불렀는데 온몸으로 화가 났다고 말하는 듯 다른 식탁에 앉았다. 누가 화를 내야 하는지 분간이 안 되는 것 같아 인사도 하지 않고 나왔다.


마음이 무겁다. 조금 더 참을 걸, 그걸 못 참고 문자를 보냈을까. 후회도 해 보지만 나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한두 번이 아니기에 벼르고 이야기한 것이다. 작은 일로 마음이 생채기가 난다. 그냥 넘어가지 이야기를 해 가지고 서로 불편해야겠냐고 나 자신을 다그친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할 것이 있어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갔다. 반납하고 생각도 정리할 겸 집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김시민대교를 걷는다. 빗방울 드는 것을 보려고 다리 아래를 내려 다 본다. 물살 때문에 비 내리는 흔적이 묻혀 보이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저 빠른 물살처럼 다른 것들은 묻어 버리고 나만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중요하고 중심이어야만 했던 때가 있었잖은가. 그 시절이 지났다고 생각는데 가끔 한 번씩 불뚝일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빗방울도 받아내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닐까. 웬만한 일에는 좀 손해를 보면서 살아도 될 터인데. 저만큼 물살이 느린 곳에는 비가 동그라미를 마음껏 그린다.


다시 걷기 위해 방향을 돌리는데 누렁개 한 마리가 비 맞은 채로 내 옆에 있다. 놀랐지만 천연덕스럽게 걷자 누렁이도 같이 달린다. 내가 천천히 걸으니 누렁이가 앞섰다가 돌아와 나랑 보조를 맞춘다. 그러기를 몇 번 다리 끝에 다다르게 될 즈음에 속으로 ‘나는 너를 키울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그것을 알아들었는지 갈림길에서 혹여 기다리나 두리번거렸지만 누렁이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쿵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렁이를 키울 수가 없기에 혹여 끝까지 따라오면 어쩌나 갈등을 했다.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아예 시작도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잠깐 만난 누렁이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 듯 홀연히 제 갈 길로 갔다.


아주 작은 일들로 마음속 평화가 흔들린다. 남에게 못할 말을 하면 내 마음이 더 아플까 봐 조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도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라는 무언의 외침이고, 물건값을 깎지 않는 것도 누군가 내 인생을 깎아내리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물살이 옅은 곳의 강물처럼 여유 있게 빗방울도 받아내고 새가 노니는 것도 보아주고 햇빛의 수런거림도 안아내는 넉넉한 마음이고 싶다.


내 마음도 비 오는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송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