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란에서 바라보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밭이다. 백여 평 가까이 되지 않을까. 나이 든 어머니가 일을 못하도록 무언가를 가꾸기로 했다. 처음에는 울금을 심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즈음 황금알을 내어 놓는다. 그것을 일일이 손질해서 가루를 빻으려니 너무 힘들어서 통과. 다시 무얼 심어야 할지 고민할 때 천년초를 심으란다. 잘 자라고 강하고 한 번 심어 두고, 필요할 때 수확만 하면 된단다. 노란 꽃도 피어나 예쁘다는 말에 마음이 기운다. 몸에 천 가지로 좋다는 천년초. 잎인지 몸인가를 준다. 선인장은 잎이 변하여 가시가 되었다니 몸이 맞겠다. 지난해에 두둑을 만들고 손바닥 같은 천년초를 묻었다. 낼모레면 손가락 끄트머리마다 파랑파랑 노랑나비 떼들이 앉을 텐데.
밭 위에는 외지인들이 정년퇴임을 하고 집을 지어서 들어와 산다. 주차장으로 쓴다고 밭을 달라고 어머니에게 말을 넣어 보낸다. 고향에 내려 올 형제가 있을 수도 있고, 누가 살더라도 밭은 필요하다고 했다. 욕심은 끝이 없는 걸까. 벌을 치고 꽃으로 밭둑마다 띠를 두르고 저 끝 간 데까지 과실 수들이 솟구쳐 있는데. 빨래를 말려놓으면 가시가 날아와 옷 속에 들어 있다가 바늘처럼 찌른단다. 천년초 농사를 짓는 분이 괜찮다고 했는데. 노인정 앞이라고. 담장 있는 집도 가깝다고. 노란 꽃이 피어나면 관광지가 된 듯이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동네 어르신들이 좋아한다고. 열매가 빨갛게 익으면 한번 더 벌어지는 함박웃음들. 어머니를 통해서 천년초를 없애라는 마을 사람들의 성화가 들려온다. 이미 처리하겠다고 이야기해 놓았는데도. 꽃 한번 못 보고 뽑아야 하는 안타까움. 노랗게 핀 꽃들 사이로 해맑은 나의 웃음은 지어지기도 전에 스러지는구나. 우리 땅인데도 맘대로 못한다.
박스와 자루를 준비해서 갔다. 면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한 겹 더 끼고, 벌 모자를 쓰고 천년초를 딴다. 저희들이 장미인 줄 아나! 몸을 가시로 무장을 하고. 가시가 세지 않지만 겁이 나고 무섭다. 먼지같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것들이 숨구멍마다 속속 박혀 있다. 밭 째 두고 원할 때마다, 천년초 즙을 짜서 마시면 관절에 좋다는데. 너희들 운명은 여기까지다. 불어오는 바람에 남편 눈에 가시가 들어갔다. 반격이다. 눈을 비비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집으로 간다. 나도 따라간다. 손을 씻고 바람을 불어 달라고 한다. 그 작은 눈에다 입 바람을 연신 훅 훅 분다. 소용이 없다. 토끼눈이다. 나는 그대로 두고 안과에 가자고 채근한다. 남편이 소금을 가져오라고 한다. 한 주먹의 소금을 세면기에 푼다. 소금물에 눈을 대고 껌벅거리기를 몇 번. 조금 진정된 것 같다고. 짠맛에 가시가 절여져 노그라졌나.
작은 것들이 뭉치면 힘이 세다. 겹으로 낀 장갑 안까지 파고든다. 몸이 온통 가시투성이다. 그 사이에도 우뚝 선 산은 손을 내밀듯 건들거린다. 새로 돋는 움마다 빛깔도 다 다르다. 새잎 하나 피워 물고 구름 한번 쳐다 보고 바람에 뱅실뱅실한다. 내 마음을 가져가 버린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남편이 뭐하느냐고 묻는다. 산을 감상 중이지! 하면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스물한 살 청년이 갓 세수한 듯 청신하다고 노래한 시가 떠오른다. 아기의 젖니가 돋아나는 듯하다. 야들야들한 볼을 살짝 만져보고 싶어서 자꾸 눈으로 더듬는다. 마음을 계속 주었다간 일을 언제 할지 모른다. 모자를 눌러쓰고 천년초를 자른다. 고민이 된다. 이것들을 가지고 가서 어찌해야 할지! 전화번호를 누른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필요한 분이 있는지, 고민을 해 달라고 부탁하고 끊는다. 모종도 주고 심으라고도 했으니 책임지라는 압박인가.
큰 박스로 두 개, 작은 자루로 두 개를 차에 실었다. 아직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것. 철마다 값이 폭락하여 고생해서 키운 채소들을 갈아엎는 농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올봄에도 구경 오는 사람들 때문에 애먼 유채 밭을 뭉갰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저것들을 밭에 묻어야 되나. 버리지만 않고 누군가에게라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천년초 즙을 짜는 사장님께 연락한다. 여러 가지 즙들을 인터넷 판매를 하기에. 무료로 드린다니까 가져오라고.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앞으로도 띄엄띄엄 세네 번 가져다 드려도 되느냐고 한다. 미안해하면서 고마워도 하는 야릇한 표정을 보며, 이런 날도 한 번씩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눈으로 말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온다. 어서 저녁을 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