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세계적인 상을 받고 다시 상영될 때, 대륙에서는 바이러스가 비행기를 예약해 놓고 숙주를 늘려가고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기 위한 작전을 세우고 있을 때 우리는 짜파구리를 끓였다.
어떤 맛인지 알고 싶었다. 결국 입맛은 같다는 말인가. 마트에 갔다. 수레를 끌고 라면 코너로 직행. 짜파게티가 동이 나고 없다. 눈을 비비고 확인했다. 한발 빠른 사람들. 어쩔 수 없이 더 비싼 사천 짜파게티를 집고, 너구리를 샀다. 채끝 살이 없는 동네에서 산다. 대신에 비엔나소시지를. 요리사는 막내아들. 가만히 앉아서 먹을 수도 있구나를 실감한다. 요리를 맡기는 것이 처음이라 아예 손 떼기가 미안해서 소시지 한쪽에 칼집을 넣었다. 석류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아들이 만들어 내 온 짜파구리 한 젓가락에 두근거림이. 먹을 만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꽃으로 피어난 소시지에 들어있는 엠에스지 맛도 일품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모든 맛에 조금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무조건 자연식으로 먹여보려고 애썼다. 잘 키워야 된다는 책임감에서 해방되어 그런가. 매콤한 사천 짜파게티가 느끼함을 잡아주어 오히려 칼칼함이 살아났다. 초록색 완두콩을 찾아먹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반쪽을 입속에 넣는다. 달콤 고소함을 맛보며 유월이 오면 연둣빛 완두콩을 듬뿍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번진다. 고슬고슬한 쌀밥을 짓고 끓는 소금물에 살짝 익혀낸 완두콩을 섞는다. 흰색과 연둣빛과의 만남을 무어라 표현할까.
틈만 나면 짜파구리를 끓일 수 있는 것을 사다 날랐다. 프랑크 햄이라든지, 스팸이라든지 얹어 먹을 것들도 같이. 그거라도 없을 때면 달걀 프라이를 얇게 펼쳐 부치면 접시마다 달이 떴다. 아들에게 엄지 척을 했다. 손 하나 까딱 하기 싫은 날이면 아들아 짜파구리! 기름기 잘잘 흐르며 나타나는 구리 구라. 구리 구라는 커다란 알을 발견하여 빵을 만들어 숲 속의 동물친구들과 다 같이 나누어 먹는다는 그림동화 속 생쥐. 우리는 짜파구리를 나눠먹는 구리구라.
창의력과 상상력이 요리를 즐겁게 한다. 아들은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나에게는 새롭게 도전해보지 못하게 한다. 내로남불이다. 나는 그냥 먹을 수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여서 맛있다를 연발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가 주어지니까. 맛있다고 주문을 걸어서인지 진짜로 맛있다.
영화에는 공감을 못하고 라면으로 배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을까. 제목부터 기분이 나빴다. 감독의 의도가 어찌 되었던 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생각이 여러 갈래로 튀었다.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진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고 싶고,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한다. 누구는 계획 영화라든지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사회적인 모순된 모습의 반영이라고. 물 위에 기름처럼, 달걀노른자처럼 현실을 더 극적으로 희화화 해 놓은 것은 아닐까. 대안은 영화를 본 사람들 몫으로 돌렸나. 대안이 있기는 할까. 반성은 없다. 살인이라는 것도 은폐하면 된다. 자신의 가족은 중하지만 타인의 가족은. 이런 생각들이라면 함께 살아갈 사회라는 공동체가 버텨낼 수 있을까. 병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나.
선을 그었다. 나는 지하에 사는 사람들 축에 끼이는 것 같아서 언짢다. 특이하게 이 영화에서만 순진하게 그려진 가진 자들 속에 놓여 있다면 기분이 괜찮을까. 아니다. 뭔가 우롱당한 느낌이다. 대놓고 그런 소리를 못하고 미디어라는 손가락으로 너희들 다 똑같아. 자격지심에 순수하게 영화를 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저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면 욕망이라는 지대는 같다는 걸까.
지하의 사람들끼리의 싸움. 한 때는 그런 말이 돌았다. 을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갑들은 뒤에서 웃고 부채질한다는. 살아남은 자들이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싸움은 패자만 있고 승자는 없다. 영화가 사회를 지목하고 있거나 인간의 몸을 빗댔다 할지라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답을 삭제했다. 갈피마다 의문부호만 잔뜩 찍어놓고 끝내 버렸다. 앞으로 사회문제로 대두될 실업과 속여서라도 살아가야만 하는 처절한 삶의 한 복판을 보여주기를 원했는가. 속고 속이며 죽고 죽이는 때가 오기 전에 사회가 무너지기 전에 준비를 하라는 것인가. 자신의 생각으로 보이는 것만 볼 수밖에. 나의 아는 것이나 사고가 얄팍함을 확인해볼 뿐이다.
기생충이 잠잠해질 때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유히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기를 탔다. 전국을 떠돌다 지금 꼬리를 감추고. 세력이 약해지면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나방처럼 고치를 만들고 다른 정체로 깨어나려고 숨을 고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짜파구리를 그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아들이 제발 국물 라면 좀 사 오세요. 알았어. 영화는 짜파구리를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