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

by 민진

‘수목원이 너무 예뻐요’ 보내어 온 사진 여섯 장. 마음이 빠져든다. 벌써 피기 시작한 모란, 할미꽃의 고개 숙임. 꽃 잔디가 땅에 불을 지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작가처럼 찍은 사진을 아낌없이 나누어 받는다.

내 인생의 열매 중 배 안 아프고 낳은 아들 둘 중 동생이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내려왔다. 수목원 나들이를 가기로 한다. 김밥은 지나는 길에 로컬푸드에서 사기로. 맛도 가격도 괜찮다. 딸기와 방울토마토만 씻어서 통에 담는다.


문이 닫혀있음이 도착하기도 전 저만큼에서 보인다. 이상하게도 사람이 없을 때 와지는 스산함은 표가 난다. 온기가 빠져나간 곳에서 와지는 쓸쓸함일까. 삼십육 점 오도가 가지고 오는 미지근함이 서로 보태어져 따뜻함을 만들어 내는가. 생기가 빠져나간 곳에서 와지는 황량함. 셔터 문에 기대어 있는 쓸쓸함을 뒤로한다.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안타까움. 잠깐의 방황. 가까운 김밥 집에서 아쉬운 대로.

눈 두는 곳마다 연한 미풍 같은 경치가 흐른다. 어린 메타세콰이어가 두 줄로 나란히 서고 정자들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김밥을 펼친다. 감사하고 먹는다. 돈가스 김밥이 인기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색색의 채소들이 가지런히 어우러지면 입의 미각을 깨울 텐데. 밥이 약간 질다. 우엉이 너무 많이 들어갔나. 시간을 들이지 않는 식탁은 조금 엉성할 수밖에. 한 끼 식사가 주는 의미는 참으로 귀하다. 웃음과 말도 같이 먹는 건가. 즐겁게 먹을 때의 포만감은 다르다. 마음 한편에선 왜 하나로 마트가 문을 안 열었을까 물음표가 지워지지 않는다.


동생도 하나로 마트에서 그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왔는데. 자영업을 하던 제부가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 자식들과 살아내야 했다. 아파트 대출금은 다달이 숨 못 쉬게 밀려오고. 산다는 것이 뭔지 잊어버리고 싶은 날들 속에서도 잘 견디어냈다. 어둠 속에 있던 사람이 깨어나고 말도 하게 되었을 때 창문으로 비치어 들어오는 빛살 같았다.

보내어 온 사진

작약은 아직 입을 열지 않고 왕사탕처럼 꽁꽁 싸매고 있다. 함빡 웃음을 머금을 때 오면 장관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난다. 산긴잎조팝들이 버들처럼 늘어져 눈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나무수국들은 벌써 주먹 같은 꽃망울을 터트렸다. 만지지도 않았는데 꽃봉오리에서는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한그루의 동산이다. 이팝이 쌀알처럼 피어난다. 온통 하얗다. 계절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꽃 지도. 초록의 잎들과 흰색의 꽃들이 조화롭다. 시원한 쓴 커피 한잔이 달다.


호수로 연결되는 개울가에는 벌써 저버렸을 철쭉이 싱그럽다. 잇따라 사진을 찍는 남편이, 꽃이 아주 싱싱해서 예쁘다고 몇 번을 입에 담는다. 물가라서 그렇죠. 싱싱하지 않은 마누라 곁에 두고 자꾸 싱싱한 것만을 찾으면 곤란해요. 모두 웃는다. 마음만은 비 맞고 피어나는 새잎 같아요. 위로일 뿐이다. 눈은 세수한 듯 즐겁고 마음은 날아가는 새처럼 가볍다. 천천히 걸으며 예쁜 말들, 막 피어난 꽃, 새소리를 마음에 담는다. 펼쳐보면 무슨 색깔일까. 개울가에 꽃창포의 노란 웃음이 청초하다. 거닐고 거닐어도 거닐고 싶은 마음을 접는다.


쉬다가 내일 아들들과 저녁을 먹으려고 시장에 간다. 필요한 것들을 사들고 돌아오면서 오늘이 근로자의 날인 것이 생각났다. 아, 그래서 매장이 외로웠구나. 잘들 쉬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근로자일 때는 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놓고 이제는 날짜도 기억 못 하는 무심한 사람 한 사람. 아쉽지 않으면 쉬 잊어버리는 가벼움. 모두가 손잡고 만들어낸 우리들의 소중한 삶.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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