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몽쉘

by 민진

딸아이 육 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의 부모님은 하늘나라로 먼저 가 있겠다고 떠났다. 아빠 먼저, 엄마는 일 년 뒤에. 더 좋은 기회를 주기 위해 담임과 의논하여 잠시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 아이들이 자라 햇살처럼 미루나무가 되었다. 네 명의 내 아이들에게 같이 살아도 되겠느냐고. 같은 학급의 남자 애인 데도, 큰 딸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육 학년 사 학년이었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고 시인은 노래했는데, 우리는 큰 인연의 울타리에 들었다.


그중 형이 논산에서 훈련을 마치는 날 압력솥에 좋아하는 돼지갈비찜을 해가지고 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갈비찜 맛있었어! 물어보면 최고로 맛있었어요. 해 주니 고마울 뿐. 무언들 맛있지 않았을까. 그 뒤로 휴가 올 때 뭐 먹고 싶어 하면 집 밥이면 다 좋아요. 할 때 눈물이 핑 돌았다. 군 식당에선 삼겹살을 굽고, 치킨, 소불고기 없는 음식이 없다. 아들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현장을 찾으라면 바로 그곳이지 않을까. 식사를 마치고 몇 시간의 외출이 주어졌다. 카페로 갔다. 차를 마시며 훈련에 대하여, 사격에 대하여 끝없는 이야기는 꽃으로 피어난다. 같은 방 동기가 케이크를 가져온다.

모르면 용감해진다. 사과와 몽쉘을 박스에 담아 논산 훈련소로 띄워 보냈다. 뒤에 알았지만 금지된 품목이었다. 후회했지만 내 손을 떠났고. 맡기는 수밖에. 식당에 앉자마자 맨 먼저 물어보았다. 택배로 보낸 것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다른 소대는 모두 압수했는데, 자기네 상사는 허락을 해 주어 다 같이 나누어 먹었다고. 작은 여유는 행복이 끈으로 묶이어 있다. 미루어 짐작컨대 케이크를 가져다준 것은 그때의 순간을 잊지 못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단 것이 금지되었던 나날에 사과 한 개와 몽쉘 두어 개는 최고의 간식이 아니었을지. 잊지 못할 순간은 찰나다. 소대원들에게 고마움의 대상이 되는 것도. 몽쉘이 케익으로 변하는 것도.


친구 아들은 해군에 갔다. 진해 훈련소로 면회 올 때에 몽쉘을 사 오라고 했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모든 식구들이 다 같이 갔다. 좋아하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서. 식사 자리로 옮겨가는 차 안에서 몽쉘을 계속해서 먹었다는. 정작 식사 시간에는 배가 불러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달콤하여 입에서 사르르 녹는 몽쉘은 훈련병들에겐 참을 수 없는 유혹인가.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 쫓기는 상황에서 화순을 지나야 된다. 마지막 검문소에 가로막힌다. 총을 든 군인이 트렁크를 뒤진다. 가리어져 있던 서울 택시 번호판을 발견한다. 클로즈업시켰던 몇 초에 손에 땀이 배어나고 긴장감이 돈다. 외국인 기자도 택시운전사도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에겐 한 사람이 더 떠오른다. 검문소에서 번호판을 보고도 ‘보내줘라’라고 했던 그 군인의 한마디. 오일팔이 되어 오면 같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순간의 결정이 더 많은 인명피해를 줄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이 지긋하였을, 머리가 희끗거리며 멋지게 살고 있을 그에게 진심으로 오월 같은 나날이 되기를 바란다.

가끔 생각한다. 그런 아찔한 순간이 오면 과연 나는 어떨까. 찰나라는 팽팽한 공기로 터지기 직전 같은 순간에 옳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지시한 대로, 시키는 것이나 잘하는 사람으로 얌전하게 살아가는 편한 것에 길들여지고. 삶의 갈피마다 숨어 있는 진실의 반짝임을 어떻게 판별할까. 각본에 없는 삶을 연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은 곡선과 사잇길의 마주침인가.


논산훈련소 입소하는 날, 연약해 보이는 아들. 모든 순서를 마친 뒤 안으로 들어갈 때에, 잘할 수 있을까. 어쩔 줄 모르는 긴장된 마음이 짠하게 전달되어왔다. 쫓아가서 도와줄 수도 없고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기도 할 수밖에 없었던. 운전병으로 특기학교와 군 생활을 잘해 냈다.


벚꽃이 흩날리던 날 입소하던 조카가 훈련을 마칠 때가 되었다. 울림 없는 메아리처럼 인터넷 편지만 보내고. 수료식 하는 날은 몽쉘을 사 가야지 마음먹었는데. 면회가 없어졌다. 몽쉘과의 또 한 번의 기회를 잃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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