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깊은 어둠은 새벽을 품고 있듯

by 민진


가을인데도 봄인 듯 온갖 꽃들이 방싯거린다. 호수공원을 지나고 다른 나라의 정원들과 항아리 정원도 보며 거닌다. 네덜란드 정원에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지 하고 갔는데 쉼터가 없어졌다. 더 많은 꽃들의 향기와 풍차의 돌아가는 멋스러움에 자리를 내줬다. 어딘가 먹을 곳이 있겠지 하며 걷자 정자가 있다. 다른 일행 중 한 아저씨가 “입장료를 내야 되는 데요” 한다. 표 끊을 때 한꺼번에 냈지요. 하며 자리를 잡는다. 그분들은 과일만 먹고 있어 김밥을 나눠먹는다. 코스모스 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꽃밭을 바라보며 먹는 김밥. 꼭꼭 씹는 행복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코스모스들이 한창이다. 봄에도 여름에도 계절 없이 피어나던데 여기서는 소로시 가을의 전령으로 한들거리며, 어릴 때 코스모스 꽃밭으로 나를 데려간다. 학교를 읍내로 다니느라고 신작로를 십리를 걸어 다녔다. 친구들과 머리에 꽃도 꽂고, 책갈피마다 꽃을 넣으면 꽃물이 들었다. 코스모스들이 마련한 가을을 소녀들은 마음껏 즐거워했었는데. 순천 국가정원에서 이렇게 만발한 꽃밭을 선물 받을 줄은 몰랐다. 꽃과 눈 맞추고, 어루만지고 사진을 찍으며 웃는다. 아, 좋다! 를 반복하며 아이같이 천진난만해진다. 하늘은 어쩜 저리도 푸른지.


꽃밭을 거니는데 친구의 전화가 온다. 안 좋은 소식이란다. 갑자기 꽃들이 빛이 바랜다. 가녀린 그이의 얼굴이 코스모스와 겹쳐지며 가슴 한쪽이 아파온다. 삶이란 지난한 동네를 돌고 돌아 지금은 살만한 시간이 되었는데. 인생은 우리에게 한 번씩 채찍을 드는가. 숙제처럼 받아 든 진단서. 아무리 의술이 좋아졌다고 하나 몸에 메스를 댄다는 것은 마음을 움츠러들게 한다. 몸보다 정신을 먼저 베어내는 듯 아리고 아리다. 남들 다 하는데, 잘 되겠지. 각오와 자신을 해봐도 뭔지 모를 불안과 공포를 어찌하기가 어렵다. 오진이었기를 실낱같은 희망 한줄기를 품는다. 무엇 때문에 이런 질병이 찾아들었을까를 곱씹고 곱씹는다. 정답이 없는 답안을 작성해보며 자신을 추슬러야 한다. “기도할게요” 아껴둔 말처럼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담아낸다.


올해는 유난히 태풍의 소식이 잦았다. 그 가운데서도 코스모스들이 꿋꿋하게 꽃대를 밀어 올렸다. 꽃송이 하나하나 별이듯 환하다. 꽃들에게 말한다. 그이가 수술 잘 받고 항암도 잘해서 예전처럼 건강하게 잘 살 것이라고. 우리 인생도 소중한 꽃들로 피어나야 한다고. 가끔 삶의 어려움이 어둠으로 다가오지만, 가장 깊은 어둠은 새벽을 품고 있듯 더 단단해진, 다시 삶으로의 초대다. 꽃밭을 마음에 담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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