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부쟁이

처음은 늘 어수룩하다

by 민진



꽃송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피워낸다. 보랏빛 꽃잎 속에 노란 꽃술이 앙증맞다. 북천 코스모스 축제에서 화초를 파는 이의 이름은 모르고 꽃이 예쁘다는 말만 듣고 덜컥 샀다. 터가 있는 아랫집에 심었다. 해가 지날수록 목대가 되어 가을이 저물도록 꽃은 피어나고,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보랏빛으로 은은히 번진다. 쑥부쟁이이었다.


봄이 되자 많은 순들이 돋아나 모종을 얻어다가 너른 화분에 심었다. 들꽃이라 잘 살 건데도 꽃을 기다리는 마음에 애를 달아했다. 해가 짧아지자 몽글몽글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작게 키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꽃들을 여럿 키우고 있지만 처음 내게로 온 아이들(꽃)에게 기대와 우려를 가진다. 잘 적응해서 편안하게 자랄 수 있도록 물도 잘 챙기고 벌레도 잡아준다. 처음은 늘 어수룩하다. 기다란 줄기들이 화분 앞으로 사태 져 쏟아진다. 자라는 중간에 생장점을 잘라 알맞은 크기로 키웠다면 더 좋았을 텐데. 화분을 겹으로 쌓아놓으니 꽃구름이다.


들꽃이 저 먼 기억 속으로 나를 끄집는다. 아버지는 육지 답을 팔아 바다를 막은 갯논을 샀다. 마지기수가 한자리에서 두 자리로 뛰었다. 논바닥의 높낮이가 달라서 높은 곳의 흙을 실어다가, 낮은 곳을 메우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학교가 끝나면 곧장 달려갔다. 쉴 때면 논두렁에 끝도 없이 피어나는 연보랏빛 갯쑥부쟁이 사이를 동생과 뛰어다녔다. 저만큼 갈대도 바람에 쏠리며 같이 사부작대었는데.


첫해는 풍년이었다. 다음 해부터는 태풍과 홍수, 백 중물에 둑은 칼로 잘라놓은 듯 십 미터 정도 바다로 쓸려가 버렸다. 한 여름의 쨍한 햇볕에 짠물이 잠긴 나락들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부모님의 속도 숯검정이었을 것이다. 빚을 얻어 중장비로 둑을 막고 벼농사를 반복했다. 삼 년을 내리 농사를 버려놓자 아버지는 화병을 얻어 몸 저 누웠다. 연습이 없는 삶이어서일까. 다시 해보기가 없는 외길의 인생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감당이 안되어 그 길로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꽃을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만 생각하니 동생과 꽃 사이로 뛰어다니던 그 가을 ‘이게 무슨 꽃이지’하며 궁금해했던 생각이 난다. 꽃 빛깔은 훨씬 옅었었다. 전설 속의 쑥부쟁이는 좋아하는 청년을 그리워하다가 쑥부쟁이로 피어났다는데, 나에게도 전설의 꽃인 듯 서러운 그리움이다. 보랏빛 수수한 꽃이 마음 가득 수놓아진다.


지난해 남편, 아들과 같이 그 바닷가 논을 가보았다. 어디의 어느 만큼이 우리 논이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 고향 해남은 고천암을 막아 이제는 둑이 허물어질 염려가 없다. 화산면과 황산면의 바다를 잘라 이어 육지를 만들었다. 차를 타고 둘러보니 그렇게 넓은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경지 정리까지 잘 되어 끝도 보이지 않는 너른 벌판이 되었다. 바다였던 곳으로 차를 몰아 빙 둘러서 집으로 오는 기분이 묘했다. 저 멀리 아스라이까지 황금물결만 뒤채는 논들 속에 아버지를 무너지게 했던 땅이 어디에 숨어있을까.


해넘이가 유명해지고 철새 도래지로 더 알려진 고향땅은 낯선 곳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런 걸까. 집에 가도 오래 있지를 못한다. 금방 돌아와야만 할 것 같은 불안함이 은연중 자리한 것은 아닐까. 고향을 생각할 때 무조건 좋다기보다는 유년과 청소년기의 고독과 아득함으로 밀려온다. 혹여나 보기를 원했던 쑥부쟁이 꽃은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어쩌면 북천 꽃 축제를 통해서 이미 나에게 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쑥부쟁이는 해마다 유년의 그리움으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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