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첫 들머리에 서면 마른풀 냄새가 코끝을 간 지르고. 연초록으로 여름내 키를 키웠던 풀들이 베어져 까까머리가 된다. 건들바람이 놓이니 눈을 뜨면 강으로 간다. 강은 흙탕물로 가득 채워 우렁우렁 밀리듯이 내려간다. 강물은 언제나 세수하고 나와 보려나.
나름으로는 운동을 하겠다고 단단히 벼른다. 마음과 달리 딴짓을 하게 된다. 풀꽃들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생각을 하다 보면 원하는 것은 밀려난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운동효과를 낼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아들들과 통영의 편백나무 길을 맨발로 걸었던 기억. 가기 전에 가졌던 이미지는 울울창창 커다란 나무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작은 나무들이었다. 말로는 나무가 젊을수록 피톤치드를 많이 낸다고. 편백나무 잎차를 마시고, 족 욕도 하고 여러 가지 체험을 하지만 맨발로 나무 사이를 거니는 것을 따라올 수는 없다. 편백나무 톱밥을 효소화 해서 뿌렸다는데. 메인 메뉴인가. 해먹에 누워 하늘을 보며 몸을 뒤채면 모든 시름이 다 잊혔다. 이것저것을 해보는 아들들이 재미있어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끝없는 길이 펼쳐지면 좋으련만, 그러지를 못해서 여러 가지 숨은 그림 찾기를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아쉬워 숲길을 한번 더 걷는다.
그때처럼 흙길은 아니지만 맨발로 걸으면 효과가 배가 될 것 같다. 짧은 시간의 노림 수이다. 운동기구 있는 곳에서 몸을 풀고, 신을 벗는다. 그리고 걸었다. 피어있는 풀꽃들을 보며 나무와 하늘로 눈길을 주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다.
비 때문에 댐에 있는 물을 계속해서 내 보내느라고 강물은 불어나고. 산책로에까지 물이 담겼다. 둑 위로 거닐 수밖에 없다. 걷다 보니 다른 맛이 난다. 습관적으로 같은 곳만 가게 되는 것을 바꿔볼까. 못 보던 것들이 보인다. 다리 있는 데까지 왔다. 저 아래가 다리 밑이다.
내리막길에 쥐똥나무가 줄줄이 서 있다. 비탈길이라서 아이들 어렸을 때 인라인 스케이트로 속도를 즐기고,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내리막길의 스릴에 신나 하였다. 나는 마흔에 자전거를 배웠다. 내려가는 길은 자전거를 붙들고 엉거주춤 따라가고, 오르막길은 힘들여 밀면서 다녔다. 자전거가 나를 끄는지 내가 자전거를 타는지 구분이 안 될 때, 걸어가는 시간이 더 빠를 것 같았다. 저만큼 사람이 오면 내려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차가 오면 비켜주었다. 지금이야 속도를 조절하면서 내리막길을 슝 내려갈 정도는 된다.
쥐똥나무 사이로 달맞이꽃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보아달라고 하는지,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느라 목을 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물어보지 않았으니. 나무 밑의 풀들은 잘 깎여있다. 예초기가 한 번씩은 지나갔으리라. 돌아가는 칼날을 용케도 피했구나. 풀 깎는 분이 일부러 꽃대를 자르지 않고 두었구나. 풀꽃의 숨을 붙여놓았다. 꽃은 꽃으로 피어나야 한다.
꽃잎 위로 마음자리 하나 포개어진다. 노란 꽃송이가 잠자리 날개같이 파르르 떤다. 마음 써줌이란 작지만 크다. 사람들이 자전거로나, 걸을 때에 노란빛 웃음 한 모금씩 옹달샘처럼 축이고 갈까. 아침 산책길에 달맞이꽃을 마주할 수 있게 한 고운 마음 하나 내 마음에 얹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