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맞닿은 구석진 교실바닥에 초등학교 이학년 아이 셋, 시험지를 펼쳐놓고 도란도란. 식물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자연과목 단답형 주관식 문제. 선생님은 꼬맹이들이 시험인지도 모르고 이야기하는 것을 차마 뭐라고 못했나. 뻔하게 길거리에 널려있는 풀이름이 틀려있어 내 답안을 보고 고치라고.
해를 지나지나 오 학년이던 여름. 같이 시험 답안을 나눴던 민경이 얼굴이 하얗다. 햇살 한번 쏘이지 못한 것처럼. 어느 날 토했다. 귀찮기도 하고 언짢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도 치우지 않아 억지로 걸레질을 했다. 안타까움으로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근들 나이가 아니었나. 그것과는 닿아있지 않는 바탕의 문제 아닐까. 담임의 칭찬 비슷한 것을 들었던 듯. 마지못해 한 것이라 어색해서 뒤로는 나서지 않기로. 여름방학을 지나고 학교에 간 날 친구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백혈병이었다는. 아직도 생각나는 창백한 얼굴. 반의 반나절도 피지 못하고 햇빛만 나오면 스러지는 달개비 꽃을 닮았을까.
그이는 닭의장풀이라고, 나는 달개비라고 우겼다. 곁에 있던 남편이 내편을 먹어주었다. 지고 이기고 가 없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닭의장풀이나 달개비는 같은 풀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달아오른 얼굴. 닭장 주변에서 닭들이 쪼고 쪼아도 잘 자란다고, 닭 벼슬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모르면 용감해진다. 젊다는 것도 한몫을 했을까. 부끄러움은 조금 알면서 다 아는 것처럼 큰소리치는 것인가.
달개비 꽃으로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었다. 알아본 친구가 자기도 요즘 달개비 꽃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꽃에 코끼리가 들어앉아 있다고. 어느 시인의 시를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며. 누군가와 마음이 겹쳐지는 순간 마음이 꽃처럼 환해졌을까. 시인의 눈과 가슴은 다를까. 고운 정서와 디엔에이를 부여받았나. 사물, 자연, 우주의, 저 깊은 속내를 들락날락 꿰뚫는 듯한. 작디작은 꽃에서 그 커다란 동물을 보아낸다는 것이 놀라울 뿐.
아침에 나가 꽃 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뭘 말하는지는 알겠다. 다만 공감하고 싶지 않은 야트막한 감정선. 코끼리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모호하게 대답한다. 보아내고도 보아내지 않는 것 마냥 시치미를 뗀다. 억지로 뭘 가져다 끼워 맞추는 것 같아 마땅하지 않은가. 그냥 순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나.
꽃들이 아침 바라기를 한다. 햇빛이 비추이기 전에, 얇은 꽃잎을 도르르 말기 전에 너나없이 피어나기로 손가락을 걸었나. 한숨 같은 꽃들이 화들짝 한꺼번에 놀란다. 마디마디 옆구리를 트고 새가지 돋우어내어 꽃을 장만해두고 날마다 새로이 눈을 뜬다. 스산한 바람이 몸을 거두어들일 때까지 영원 같은 시간을 잇댄다. 날아오르지 못하는 나비 떼가 풀숲에 가득하다. 선연한 파란색으로 신비로운, 짧은 시간 찬연하게 피어 순간을 살아내는 꽃무리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빛나는 새뜻한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