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의 시선

#9. 소박하지만 소담한 일상

by 도슨트 춘쌤

Q :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은?

A : 퇴근 시간!


퇴근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 직장인이 있을까? 그 시간이 다가오면 모두의 눈빛이 바뀐다. 달리기 경주를 앞둔 사람들처럼,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푼다. 그중에는 나도 있다.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오는 그 순간은 피로가 풀리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퇴근 시간을 마주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가? 때론, 러시아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일리야 레핀(1844~1930)이 그린 <볼가 강의 인부들> 속 인부들처럼 말이다. 그림 속 11명의 인부들은 가슴과 온몸을 이용해 무거운 배를 끌고 있다. 그들의 얼굴과 표정에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그림은 실제 당시 19세기 러시아의 모습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항만 시설이 제대로 있지 않았던 러시아는 이렇게 짐을 날랐다. 이 짐이라도 날라야 먹고살았을 인부들. 그들에게 퇴근은 어떤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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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 <볼가강의 인부들>, 1873


마냥 행복하지만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온갖 걱정을 하며 집에 가지 않았을까? 노동에 비해 가벼웠을 품삯, 집에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 그리고 점점 쑤셔오는 몸을 주물렀을 것이다. 아프지만, 집에 있을 처자식과 노부모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이유다. 결국, 현실이란 삶의 무게 속에서 그림 속 인부도, 나도 그리 퇴근길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고, 퇴근길을 불행하게 보내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는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퇴근시간 속 퇴근길을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얻은 퇴근 시간이란 말인가? 원래 나는 퇴근 후 집으로 가는 시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은 스마트 폰을 바라보며 걸었다. 더 이상 누군가와 대화하기도 싫다는 표현이다. 핑계지만, 전 근무지의 환경 때문이었다. 공단 근처에 있었던 이전 근무지는 경관이 그리 좋지 않았다. 출퇴근길에 경찰차를 보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자연스럽게 나는 스마트폰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시간은 나에게 매우 아까운 ‘스킵’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옮긴 근무지는 다르다.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고, 오리들이 지나다니며, 백로가 날아다닌다. 생명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근무지를 옮기고 나서는 달라졌다. 퇴근길에 하천을 바라본다.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이어폰을 뺀다. 물 흘러가는 소리, 아이의 손을 잡고 이끌어 가는 엄마의 뒷모습, 다리 밑 물길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망울, 시원한 바람과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과 하천 속 생물들을 오롯이 바라보며 퇴근길 자체가 힐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순간을 공짜로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다. 전 근무지에는 그렇게 들고 다녔던 스마트 폰과 이어폰을 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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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마상청앵도>, 18세기말-19세기초.


김홍도(1745~1806?)의 <마상청앵도> 속 선비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길을 가다, 버들잎을 바라보고, 꾀꼬리의 소리를 듣기 위해 멈추었다. 저 선비도 퇴근길에서 마음을 울리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소리 하나, 느낌 하나, 놓치고 싶지 않으려는 모습이 나와 같다. 퇴근길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것 하나하나가 새롭다. 이런 길을 따라 퇴근을 한다는 것은 진정 나에겐 행복이자, 삶의 유익이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 하나가 더 생긴 셈이다.

퇴근길, 무엇을 보며 집에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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