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Viator

#8. 소박하지만 소담한 일상

by 도슨트 춘쌤

수원 출장길, 버스를 잘못 탔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도 버스를 잘 못 탔다. 핑계를 하자면, 스마트폰으로 봤던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나는 1시간 정도를 방황해야 했다. 겨우 지하철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다. 이제는 제대로 집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116p,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자화상, 1919..jpg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자화상>, 1919.

그들의 눈빛은 모딜리아니의 <자화상>과 닮아 있었다. 공허했기 때문이다. 미남 화가로도 유명했던 그는 방탕한 삶을 살다가 결핵성 수막염으로 36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눈동자가 없는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유는 상대방의 영혼을 잘 알지 못해서라고 한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이 죽기 직전에 그린 자화상에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스스로의 삶 조차도 방황했던 그의 그림은 헛헛해 보인다.


하지만 70대처럼 보이시는 노인은 예외였다. 그분은 홀로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마력을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슬그머니 책의 제목을 봤다. <내가 춤추면 코끼리도 춤춘다>였는데, 더 나은 독수리가 되기 위해 아픔을 인내하며 자신의 부리와 털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노인은 독수리를 보며 자신을 떠올린 것일까?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노인에게서 고갱의 향기가 났다. 고갱은 증권사 직원이었다. 하지만 화가를 꿈꾸며 직업을 포기하고 화가의 삶을 선택했다. 그는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남태평양의 타이티섬으로 여행을 다니며 ‘종합주의’라고 하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그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고갱의 삶이 담긴 명작이다.


118p,외젠 앙리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두면 화면으로 - 그림 대체.jpg

외젠 앙리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 두면 화면으로 배치?




자녀의 죽음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고갱은 이 그림을 그렸다. 인간의 삶 전체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인생을 고민하게 만든다. 고갱은 얼마 후 고독하게 죽었다. 하지만 그의 일생은 윌리엄 서머싯 몸에 의해 <달과 6펜스>로 재조명되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머나먼 타히티까지 와서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그의 삶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던 그 노인에게서 고갱이 보였던 이유는 둘 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여행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에 대해 이야기했다. Homo Viator는 ‘그의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책을 읽고 계셨던 노인. 인생이란 길 위에서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한 발 내딛는 중이었다.

다시 나를 바라본다. 스마트폰에 빠져, 길을 잃어버렸던 순간들. 몽롱하게 의미 없이 방황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토마스 뮐러가 했던 말이다. "바보는 방황하고 현자는 여행한다." 바보와 현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같다. 둘 다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은 다르다. 현자는 바보가 모르는 '의미'를 찾아 떠도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의 ‘길’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잠시 이탈했던 인생의 경로를 다시 설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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