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니?

#6. 소박하지만 소담한 일상

by 도슨트 춘쌤

3년, 그 친구의 이름으로 전화가 울리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대학교 친구였던 그 녀석. 함께 미래를 고민하고, 대학 생활의 낭만을 술로 풀었던 친구. 그렇게 우리는 20년이란 시간을 흘러 보냈고, 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의 풍파를 견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않는가?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연락이 온 것이다. “잘 지내니?”라는 통속적인 한마디와 함께. 몇 가지 추측을 해 봤다.

1. 결혼이 다가왔다.

2. 돌잔치를 한다.

3. 부의를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모두 틀렸다. 그 친구는 ‘갑자기’ 내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한 것이었다. 그냥 생각이 나서 보고 싶었다니.

뒤러의 <기도하는 손>이란 제목의 드로잉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뒤러는 북유럽의 ‘다 빈치’로 불릴 정도로 다재다능한 솜씨 좋은 예술가였다. 그리고 판화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기도하는 손>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10p, 알베르트 뒤러, 기도하는 손, 1509..jpg

알베르트 뒤러, <기도하는 손>, 1509.


뒤러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프란츠 나인스타인과 함께, 그림을 공부했다. 하지만 둘 다 가난했기 때문에 더 이상 공부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그러자 프란츠 나인스타인은 자신이 돈을 벌어 뒤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뒤러는 그 친구 덕분에 전념할 수 있었고, 성공한 예술가이자 사업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고향에 돌아와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때 프란츠 나인스타인은 돈을 벌면서 투박해진 손으로 뒤러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친구의 간절함과 뒤러의 미안함이 맞닿은 그림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Friend의 어원은 ‘freogan’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의 사랑은 아니지만,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뒤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랑이란 단어의 뜻이 생각할 사(思), 헤아릴 량(量)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면에서 친구의 ‘사랑’은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봤다.


나와 함께 추억을 공유했던 친구들에게 얼마나 연락을 하고 있을까?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도리어 목적성 있는 전화만 돌린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잘 지내니?”로 시작하는 문자를 친구들에게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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