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소박하지만 소담한 일상
출근길에 만난 현수막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 지금이 최대 고비입니다!’
코로나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이 질병은 우리를 모두 지치게 만든다. 그리고 삶의 형식도 바꿔 버렸다. 중세 유럽의 ‘흑사병’처럼 말이다. 흑사병의 참혹성은 피테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에서 잘 드러난다.
피테르 브뤼헐, <죽음의 승리>, 1562.
플랑드르 풍자화의 대가였던 브뤼헐은 흑사병을 ‘죽음의 승리’로 표현했다. 해골과 사람의 싸움은 지금의 좀비 영화를 방불케 하며, 모든 인프라가 무너져 버렸다. 이 그림이 그려진 16세기는 흑사병이 유행 한지 2세기가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포를 느끼는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흑사병은 감염되면 신체의 일부가 검게 변하고, 치사율도 높았기 때문이다. 기록마다 차이가 있지만 1347~1351년 동안 유럽 전체 인구의 1/3인 7천 5백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중세의 흑사병과 코로나는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을 공포와 충격 속에 살며 서로를 혐오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현수막 글귀의 주어를 나로 바꿔 읽어 보았다.
“나는, 지금 최대 고비입니다!”
내 삶도 여러 면에서 최대 고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깔딱 고개를 건너는 등산객의 마음처럼, 닥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조금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태산처럼 날 압박했던 그 고비의 순간이, 사실은 작은 언덕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흑사병이 유행한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흑사병이 끝나도 천국은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많은 전쟁을 했고, 서로를 죽였다. 혐오는 최고조에 달했고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학살이 일상처럼 이뤄졌다.
현실 속 코로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수막이 만들어진 시점보다, 감염자와 사상자는 더 많아졌다. 저 문구대로라면, 최대 고비는 매일 갱신 중이다. 이처럼, 오늘의 힘듦은 언제나 내일 다가올 고난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지금 내가 가진 문제들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흑사병을 마주한 중세 유럽인들은 크게 3가지 선택지에 놓여 있었다.
자포자기
신앙으로 극복하기
‘인간(나)’를 발견하기
세 번째를 선택한 이들이 만든 시대가 ‘르네상스’이다. 르네상스는 ‘재생’, ‘부활’을 의미한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유럽인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인간’의 가치를 다시 발견했고 흑사병 이후 붕괴된 사회를 재건했다. 최악의 순간에서 인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새로운 시대의 그림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로마의 비너스를 소환하여 인간미를 마음껏 표현하였다. 중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그림 형태다. 중세는 인간을 죄악의 덩어리로 봤고, 그 결정체인 신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르네상스인들은 인간의 신체를 ‘긍정’했고, 세상의 변화시킬 힘을 발견했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6.
위기 앞에서 호들갑 떨거나, 문제를 과대 포장하여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항상 고비의 연속이라는 명제를 인정하자. 그리고 현실을 긍정하며,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자. 르네상스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