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소박하지만 소담한 일상
변상벽, <묘작도>, 18세기.
욕심이 생길 때가 있다. 그것만 있으면, 내 삶이 더 빛날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누구나 그런 것 하나쯤 있지 않은가? 우리 고양이 강이도 그런 것이 있다. 바로 모빌이다. 강이는 하늘을 쳐다보며, 모빌을 응시한다. 에어컨 바람에 휘날리는 모빌은 흡사 나비 같다. 모빌을 바라보는 강이의 눈빛은 심상치 않다. 저것을 잡아야지!라는 눈빛.
‘고양이 화가’라 불린 변상벽의 <묘작도> 속 고양이도 이와 같다. 강이처럼 생긴 ‘고등어’ 고양이 한 마리는 더는 나무 위로 못 올라가고 아래에 있는 고양이를 바라본다. “난 글렀어….” 하는 듯하다. 이 두 고양이의 목표는 나무 위 참새인 것 같다.
그림 속 고양이와 다르게 강이는 제법 유능한 사냥꾼이다. 집에 들어오는 벌레들을 잡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제법 야생적 본능이 남아 있다. 길바닥 출신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강이는, 이 모빌을 보면서 항상 반응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 모빌은 거짓이다. 문제는 강이가 봤을 때 이 모빌은 실제 나비처럼 움직인다는 것에 있다. 나는 안다. 에어컨 바람에 움직이는 모빌은 허상이라는 것을…. 강이가 한심해 보였다.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플로라 옷차림을 한 사스키아>, 1634.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강이가 나를 보면서 한심해한 적은 없을까?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주식, 비트코인, 부동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욕심이 생기고, 질투심이 생겼었다. ‘나는 왜 저런 기회를 못 잡지?’ 자책하기도 했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인류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이다. 렘브란트가 그린 <플로라 옷차림을 한 사스키야>라는 그림 속 여자는 렘브란트의 아내다. 그녀는 봄과 꽃의 여신으로 치장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아름다운 소품 중 가장 비싼 것 하나를 고르자면, 머리 위의 튤립이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튤립의 광풍이 불었던 곳이다. 튤립의 구근 하나가 몇억을 호가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때, 많은 사람이 몰락했다. 렘브란트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동양의 액세서리에 빠져 있던 그는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인들과 렘브란트에서 나를 발견한다. 강이는 “거봐, 너도 그렇잖아!”라고 말하는 듯한다.
하늘의 모빌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강이는 방바닥에 누워 버린다. 그리고 편안한 자세로 나를 바라본다.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
“뭣이, 중한디!
절대 현혹되지 마라!”